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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슙민전력] 애의(哀意)

문조 2016. 5. 15. 02:45




[슈짐/슙민] 애의(哀意)



애의(哀意) : 슬픈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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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피아노를 치게 된 이유는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다. 어릴 적의 나는 피아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는 자고로 멋있는 태권도나 검도 같은 운동을 배워야 한다며 피아노는 꺼려하는 타입이었다. 그랬는데..

 어느 때와 다름없이 유치원 때부터 친구였던 윤기네에 놀러 갔지만 얼마 전부터 그가 다니기 시작한 피아노 학원에 갔다며 만날 수가 없었다. 실망스러움이 가득한 얼굴을 차마 지우지 못한 채 내일 다시 와야지하며 집으로 쓸쓸히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윤기를 만나기 어려웠다. 얼마나 대단한 피아노길래! 그렇게 괜스레 피아노에게 윤기를 빼앗긴 것 같아 그를 따라 덜컥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을 뿐이었다. 잠깐만 다니고 말자는 식이었는데 하얀 건반을 하나하나 누를 때마다 다르게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예뻤다. 악보 하나를 다 치고 나서 진도 카드에 친 만큼 색칠할 때마다 뿌듯한 기분이 내심 싫지는 않았다.

 



 어릴 적에는 내가 윤기보다 훨씬 키가 컸었고 손과 발도 컸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키를 훌쩍 넘어서 나보다는 확실히 컸다. 바쁘게 움직이는 나의 짤막한 손가락에 비해 길쭉하게 뻗은 손가락을 가진 윤기가 현란하게 건반과 건반 사이를 넘나드는 것을 보고 마냥 부러웠었다.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피아노 콩쿠르 때도 항상 나는 관객석에서 윤기는 트로피와 상장을 들고 무대석에 당당히 웃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었다. 자신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는 윤기의 힘찬 포부에 그럼 나는 너의 팬이 될게!라고 발언했던 시절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내가 같은 피아노를 쳐도 너는 항상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고, 나는 패배자의 길을 걷는 기분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은 '민윤기 피아니스트'를 기억했지만 그 주변에 배회하는 '박지민 피아니스트'는 결코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곁에 하루 종일 붙어있을 동안 느꼈던 패배감에 이제는 더 이상 축하는 하고 싶지 않았고 웃음마저 억지로 짓게 되었다. 이제는 네가 짜증이 나고 샘이나 어떻게 해서라도 너를 무너뜨리고 그 곳에 서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건반을 두들기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결국 앞서 걸어가는 너의 신기루조차 붙잡지 못 했다. 그래도 일등까지는 아니더라도 옆에 나란히 걷고 싶어서 죽도록 매달리고 또 치고 또 쳤다. 그러면 너는 나를 친구가 아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싶어서. 손이 퉁퉁 불어터질 때까지 닿지 않는 건반마저 집어삼킬 만큼, 그렇게 연습에 매달렸다. 그래서 너와 나란히 섰을 때의 나의 기쁨을 막지 못 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너를 넘어서고 싶은 욕망이 내 머리를 집어삼켜버렸다.






 아주 큰 사고였다. 한 손으로 내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던 너의 손가락이 아직 건반에 있음을 알면서도 그대로 건반 뚜껑을 내리닫았다. 찢어질 듯한 외마디 비명에 황급히 놀라 뚜껑을 열었을 때 너의 왼쪽 손가락들이 퉁퉁 부어오름이 눈에 확 띄었다. 나도 모르게 저질러버린 사고에 눈에서 기어코 눈물 한 방울이 뚝하고 떨어졌다.

아주 조금만, 아주 조금만 피아노를 쉬길 바랐을 뿐인데..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 급하게 윤기가 입원한 병원에 달려온 너의 어머니께 뺨을 맞던 날을, 그곳에서 괴로운 소리를 지르며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보면서 아픔을 호소하는 너의 모습을.


"어째서, 박지민! 어째서!!"






 왼손이 건반 하나하나 누를 때마다 통증을 호소해야만 했고, 결국 윤기는 피아노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의 긴 손가락들이 건반을 내리치지 못 했다.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에 화가 났는지 주먹으로 피아노 건반을 내리쳤다. 쾅- 그렇게 피아노 앞에서 좌절하는 너의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정말 미안해. 정말로. 윤기에겐 피아노가 전 부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울음이 짙어졌다. 윤기는 끝까지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저 허탈한 듯이 웃으며, 박지민 이 개새끼야. 내게 욕설을 날릴 뿐이었다.


"..왜 불렀어.."

"야, 오늘도 우리집으로 와."

"으응."





 고등학교에 가서 윤기는 제대로 엇나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눈길도 안 줬을 성향의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빠지기 일 수였다. 비아냥거리며 조소를 날리는 입가엔 하얀 담배 한 까치가 물려있었고 뿌연 연기 사이로 보이는 너의 눈과 마주치자 눈빛이 매서워졌다. 친구들 사이 가운데에 앉아 너의 앞에서 주눅 들어 고개를 푹 숙인 나를 마음껏 조롱했다.


"오늘도 존나게 뜨거운 밤이냐? 지민이 엉덩이 남아나질 않겠어."

"지랄마."

"야, 나중에 나도 한번은 하게 해줘라."

"야 말 조심해, 후 - 잘못했다가 너네 손가락도 병신 만들 수 있잖아?"






 학교가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윤기 집에 가야만 했다. 피아노 레슨을 받기 위해서였다. 윤기는 그날 이후로 피아노를 그만두었지만 그는 이 세계에선 이미 유명한 사람이었다.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울고 있는 내게 윤기가 하나 제안을 내밀었다. 자신 대신 피아노를 쳐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지 몰라서 그를 쳐다보자 그가 아픈 손을 부여잡으며 내 쪽은 바라보지 않으면서 피식 웃었다.


"이제 박지민이 아닌 민윤기가 치는 피아노를 쳐."

"..."

"박지민 피아니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록 어이가 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럼 용서해주겠다는 그의 말에 목이 떨어질 것처럼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그때부터 나는 네가 가르치는 방식대로, 너의 감정을 대신 담아서 대중에게 표현해야만 했다. 콩쿠르에서 나가는 것은 나, 박지민. 하지만 상을 부여받는 이름은 민윤기였다. 더 이상 내 피아노를 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나의 죄를 씻겨줄 벌이었다.


 피아노를 가르칠 때의 윤기는 그 누구보다도 무서웠다. 피아노 치다가 막힐 때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치지 않을 때마다 너에게 맞아 내 몸에 새겨진 멍은 사라질 기미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처음에는 윤기를 말리던 윤기 어머니도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모른척했다. 반팔 밑으로 팔에 새겨진 멍들을 보며 뭐냐고 물어보는 엄마도 넘어졌다고 둘러대는 나도 각자 다른 곳에서 서로 몰래 눈물을 훔칠 뿐이었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색깔은 오로지 하얀색과 검은색이 전부였다.








"야, 박지민. 민윤기가 오래."


 체육 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땀 냄새가 나는 체육복을 갈아입지 않은 채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는데 민윤기가 같이 다니는 무리 중 한 명이 내 자리로 오더니 내 팔을 덥석 들어 올려 나를 끌어당겼다. 하필 맞은 곳을 잡아 찌르르 거리는 아픔에 그의 손을 뿌리치며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이제는 쓰지 않는 학교 지하에 폐쇄된 음악실 앞이었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자 뿌연 연기 사이로 윤기를 제외한 무리들이 나를 보며 인사했다. 음흉하게 웃는 그들 모습에 심상치 않는 분위기를 느껴 얼른 음악실을 나서려고 하자 나를 데리고 왔던 애가 웃으며 문 앞에 막아섰다. 젠장.


"싫어! 놔!!"

"가만히 있어!"

"싫, 윽! 아악!!"


 억지로 엉덩이에 처음 삽입된 성기는 그저 아프기만 했다. 어느새 체육복은 저쪽 한구석에서 나뒹굴어 나는 알몸이 된 상태였고, 양 팔이 붙잡혀 제대로 반항하지 못한 채 당하고 있었다. 가차 없이 내장을 후벼파는 듯한 아픔에 눈물, 콧물이 절로 질질 흘렀다. 더러운 손길들이 내 몸 전체에 자신들의 성기로 비비며 딸 치고 헥헥 거리고 있었으며, 뒤쪽 구멍에선 쉴 새 없이 허리 짓을 해왔다. 허리 짓에 따라 흔들리는 몸뚱어리는 내 몸 같지가 않았다. 그들은 정액을 다 쏟을 때까지 만족할 때까지 나를 놓지 않았고, 엉덩이가 불타는 듯이 빨개져 그것들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 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였더라. 쾌락도 존재하지 않는 무차별 폭행에 나는 그만 정신을 놓아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창문 사이로 들어오던 햇살은 사라지고 어둠이 깔린지는 오래되었다. 일어설 힘도, 옷을 입을 힘조차도 없었다. 가만히 그 자세로 누워 숨을 고르게 쉬고 있는 게 다였다. 민윤기가 들어올 때까지.


"넌 이제 아무하고도 뒹굴고 그러냐? 하, 창녀야?"

"..닥쳐."


 얼마나 울었으면 목소리가 다 갈라져 듣기 싫은 소리를 내었다. 문 옆에 쭈그려 앉아 한 쪽 손으로 턱을 괴더니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의 시선이 부끄러워 한 팔을 들어 내 눈을 가려버렸다. 


"보지 마."

"집에 왜 안 오나 했더니."

".. 꺼져. 이제 지긋지긋해. 더 이상 너네 집에 가지 않을 거야. 더 이상 너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을 거야."

"..."

"그동안 네가 한 짓 생각하면 죽도록 싫었어. 하지만 내가 더 잘못했으니깐.. 그래서 꾹 참고 참았어. 근데 결과가 이거니? 이게 네가 바라던 결과냐고!!"

"... 아니."

"그럼 그깟 피아노, 버리라고."


 그가 내 알몸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수치스러웠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거리에 있는 체육복을 포기하고 힘들게 몸을 말아 최대한 몸을 가리려고 노력했다. 한숨을 깊게 내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몸 위로 무언가가 덮어졌다. 팔을 슬쩍 내려보니 윤기가 내 옆에 있는 피아노 앞에 서서 뚜껑을 열었다.  후- 그의 단 한 번의 입김에 먼지가 뿌옇게 올라왔다. 그가 검지로만 건반 하나하나 내리쳤다. 높은 도에서 낮은 도까지. 점점 내려가는 음이 나를 빗대는 것 같아 마음이 철컹 내려앉아 아까의 악몽을 생각나게 했다. 아까 너무나 울어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눈물이 어느새 가득 찼다.


"지민아, 근데 그거 좋았어?"

".. 너구나? 네가 시켰구나.."

"아니. 내가 왜? 걔네에게 꼬리친 네가 잘못 아니야?"

"개 같은 소리 하지 마!! 너잖아!! 네가.. 흡.. 네가.."

"엉덩이 잘 흔들더라. 그건 네가 좋았다는 거잖아."

"... 시발.."

"내일은 우리 집에서 흔들어줘라. 나 간다."

"민윤기 이, 개새끼야!"


 그렇게 넌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며칠째 나는 학교에 나가지 못 했다, 아니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윤기 집으로 가는 일도 없어져버렸다. 아무 말도 연락도 하지 않고 너의 집에 가지 않아도 너는 내게 단 한 번의 연락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에 웃음이 나도 모르게 비죽 비죽 새어 나왔다. 결국 넌 나를 끝까지 용서하지 않는구나. 바람이 훅 불더니 내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눈앞에 펼쳐진 새파란 하늘과 그곳에서 자유롭게, 여유롭게 떠도는 구름을 보며 내심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구름마저도 음표로 보이는 것은 떨치지 못 했다.
Rrrr-Rrrr-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핸드폰 액정에는 낯선 그 이름 세 글자가 나를 간절하게 찾고 있었다.
민.윤.기 , 이 주일 만에 그가 나를 찾는다.


"여보세요?"

"...."

"민윤기, 너 때문에 피아노가 좋아졌는데 이제는 너 때문에 죽도로 싫네?"

"...."

"근데도 웃긴 건 네가 죽도록 미운데, 나는 왜 네가 죽도록 좋냐.. 하하- 좋은 거 하나 없는데.. 바보같이.. 바보같이.."

"박지민, 할 말이 있어."

"근데 이제 나 좋아하는 것들 다 내려놓으려고, 나는 구름이 될 거야."

"뭔 소리야!"


 난간에 걸터앉아 하늘 높이 떠있는 구름을 향해 손바닥을 활짝 핀 채로 손을 뻗었다. 조금만 하면 닿을 거 같아. 때마침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등 떠미는 것 같았다. 얘도 내가 구름 되길 원하잖아. 핸드폰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핸드폰 너머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너의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나를 사랑하다는 듯이 들려왔다. 내가 점차 미쳐가고 있음을 느꼈다.


"..용서해줄게, 당장 이리 와. 박지민."


"사랑했어, 윤기야. 이건 내가 네게 주는 선물이야."





-주간슈짐 中 '용서해줄게'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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