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새벽라디오에뛰드 합작W. NANO 차창 너머로 보이는 푸른 빛깔을 띠는 논밭들이 넓게 펼쳐진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내 안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어딘가가 꽉 막힌 듯한 퀴퀴한 연기로 꽉 찬 냉소한 도시와는 달리 손 때가 묻지 않은 무욕함을 뽐내는 맑은 공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겼다. * 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나때문이었다. 큰 사고를 당한 이후, 심신적으로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다는 판단에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처음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있던 곳은 눈을 가린것 마냥 너무나 컴컴해 밤인지 낮인지 구분할 수 없을정도록 모든 빛이 완벽히 차단된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낯설음에 의도치..
[슙민] 거짓중독 w. NANO 진동이 요란스럽게도 울리는 핸드폰 화면에는 '010'으로 시작한 익숙한 번호가 나를 애타게 찾는다. 저장되어 있지 않아도 그 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진절머리나게도 알 수 있어 질린다는 표정이 저절로 지어졌다. 또 시작이야. 침대보에 얼굴을 묻고 베개를 둥글게 말아 양쪽 귀를 막아도 진동과 함께 미미하게 떨리는 느낌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벌써 9통째였다. 번쩍거리는 화면이 거슬려 핸드폰을 뒤집어 버리고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머리를 마구잡이로 흩트리니 한숨이 반사적으로 절로 나왔다. 벽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시계의 바늘 두 개다 6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까 아침에 저녁 6시에 요리를 배웠다며 집으로 초대하니까 꼭 오라는 신신당부하던 지민의 문자를 받은 기억이 얼..
[진지]마른 꽃 W. NANO 자신이 제일 뽐낼 수 있는 각자의 고유의 색으로 물든 꽃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말리는 손가락은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생화의 원색이 영롱한 점이 매력적이라면 마른 꽃들은 비록 자신의 색을 잃었다 할지라도 모순된 빛깔을 뽐내며 묘한 이질감으로 인상을 깊게 새겨놓는다. 석진은 저번에 말린 꽃들을 조심스럽게 이미 옆에 준비되어 있던 유리상자 안에 색깔별로 정리하여 넣는다. 바스러지지 않도록. 투명한 유리상자를 통해 보이는 그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 유리상자를 원래 있던 책꽂이에 다시 올려놓는다. 한 쪽 벽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책꽂이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책은 1권도 꽂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유리상자가 자기들만의 이름표를 붙이며 상자의 표..
[슙민] Never Mind화양연화pt2-합작 W. NANO * 작은 숨소리마저 공유했던 남산동의 지하 작업실에서 벗어나 크루 형들과 함께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지도 3년이 지났다. 이름값만큼 겉모습만 번지르르해 보이는 서울은 상상 속의 양지 길이었고 그 시커만 속은 걷기 힘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였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한 줄로 펼쳐 나열하는 것만큼 서울 상경은 힘들었다. 이곳에서 성공이란 단어는 단지 뭣도 모르는 꿈만 꾸는 자들의 입바른 소리일 뿐이었다. 작은 작업실 하나도 구하기 힘들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는 무척이나 적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잔인하게도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한 유일한 길은 좌절감에,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BGM - House Of Cards [슈짐]혼자 살아요 w. NANO 지난여름, 녹아내릴 듯한 쨍한 무더위 속에서 잠깐 동안 스쳐 지나간 차가움의 짜릿함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 한적한 동네가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요란스럽다. 경적소리,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 사람들과 묵직한 소리 그리고 시끄러운 기계 소리. 몇 달째 비어있던 윗집에 누군가가 이사를 온다고 들었지만 그게 오늘인지는 전혀 몰랐다. 시끄러운 소음에 잠을 자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기분 나쁜 찝찝함이 훅 치고 들어왔다. 밤새 땀을 흘렸는지 등 뒤를 만져보니 축축했다. 새하얀 침대보 위 누운 흔적이 보이는 곳에는 윤곽으로도 축축하게 젖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난하게 더위가 지나갔던 작년 여름과는 달리 올여름은 작년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