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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슙민/합작] Never Mind

문조 2016. 5. 19. 14:55


[슙민] Never Mind

화양연화pt2-합작



W. NANO







*





   작은 숨소리마저 공유했던 남산동의 지하 작업실에서 벗어나 크루 형들과 함께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지도 3년이 지났다. 이름값만큼 겉모습만 번지르르해 보이는 서울은 상상 속의 양지 길이었고 그 시커만 속은 걷기 힘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였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한 줄로 펼쳐 나열하는 것만큼 서울 상경은 힘들었다. 이곳에서 성공이란 단어는 단지 뭣도 모르는 꿈만 꾸는 자들의 입바른 소리일 뿐이었다. 작은 작업실 하나도 구하기 힘들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는 무척이나 적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잔인하게도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한 유일한 길은 좌절감에,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을 짓밟고 올라야만 했다. 아래에서 조금 이름이 알려졌다고 우습게 보았던 우리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단지 그것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졌고 평생 중 한 번뿐인 청춘에 쏟아부을 만큼 사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을 시작하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사람들이 겉으로만 들리는 소리에만 집중했고 가만히 서있는 나를 서슴없이 깎아내렸다. 혼자 서기에는 넓은 무대에서 시야의 중심이 되어 마이크 속에 존재하는 목소리와 나의 진짜 목소리가 섞여 스피커를 통해 울릴 때, 비트에 가사를 끼우는 것이 아닌 가사에 비트를 씌우는 것처럼 들려온다. 숨겨진 비트의 변화와 진심을 담은 가사의 조화. 이런 것들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벅차오르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진정으로 알아주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들은 나를 자괴감에 빠뜨려 비수를 마구잡이로 꽂았다. 전혀 영양가 없는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미끄러지는 게 일상이 돼버리곤 했다. 지속되는 슬럼프에 침대에 누워 한참을 울었던 어린 시절이 지금은 마냥 부끄럽기만 한다. 서울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유발하기 일쑤였다.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나의 노래를 조금 더 알리고 들려주기 위해, 무엇보다도 내가 노래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길거리 공연 하나 잡기도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 꿋꿋이 노래했다. 그래도 여전히 한 명뿐이라도 진심으로 내 음악을, 나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는 것을 무엇보다도 간절하게 여겼다.



   언제부터인지 그 아이가 항상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기억을 더듬어 그의 첫인상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들 솔직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길고 가늘게 그려진 눈, 선한 이미지와 어울리는 미소와 함께 곡선을 이루는 눈. 맑았다. 그 맑은 눈이 나의 내면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아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싫기는커녕 좋았다. 저 소심해요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과 달리 아이는 대담하고 당당했다. 모든 공연을 마치고 부랴부랴 뒷정리하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박지민이에요. 팬이에요.

음악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악기와 기계 그리고 목소리다. 그것들은 단지 청각의 미라면 사람의 몸짓은 시각적인 미였다. 지민은 그런 시각적인 미에 집착을 했고 동경해왔다고 했다. 자신의 꿈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춤을 보여주는 것. 그렇기에 다부진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부산에서부터 사람이 많은 이곳에 올라왔다고 했다. 하지만 힘겨운 연습생 시절에 낯선 이곳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은 반복적인 사기, 그는 이미 너무나 지쳐버렸다고 했다. 지푸라기조차 잡을 곳이 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벗어나는 대가로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표를 예매하러 가던 날, 우연히 나의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Never Mind. 서울에서 올라와 처음으로 작곡한 노래였다.


   무슨 일이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한 달동안 그가 보이지 않은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가 얘기해주지 않아 자세한 내용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때 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어째서인지 내가 만든 음악인데도 굉장히 이질적이고 낯설게만 느껴졌었다. 처음에는 익숙함의 잔상이 남아 그런 거라고 치부하여 평소 같지 않다고 추궁하는 크루 형들에게 대충 얼버무렸다. 슬럼프인가 봐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빛은 점차 어두워져만 갔고 마음은 더 무거워져만 갔다. 하루하루 급속히 찾아오는 허무함과 허전함이 뱅글뱅글 내 몸을 감싸고 내 머리를 지배하자 집중력을 마구잡이로 흩어놓았다. 연락처조차 알지 못해 그를 불러낼 수도 찾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행방이 묘한 그를 걱정하는 복잡한 심경에 혼란스러워하던 중 그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만난 지민은 괘씸하게도 오히려 피부도 깔끔해지고, 살도 조금 올랐는지 볼이 통통해진 것 같았다. 나 혼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나를 놀리는 건가. 하지만 내 입가에는 지울 수 없는 그와 닮은 미소가 그려졌다. 어느새 너와 나는 닮아있었다. 그는 내가 울면 똑같이 울어주었고 또한 웃어주었다.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단 한 사람.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왔다. 남자와 처음 하는 입맞춤에 거부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두툼하고 따뜻해서 더 옮아내고 싶었다.



"형, 좋아해요."






   오랜 시간 동안 작업실 의자에 앉아 내내 곡 작업하는데도 지루하지 않는지 옆에서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숨소리조차 고르게 내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하고 있는 것을 보아 내게 방해되지 않게 들리지 않게 응원해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민은 환하게 웃으면서 나와 같이 공연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항상 더 높이 올라는 것에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자기 식대로 욕망을 감춘다면서 감추지만 때로는 텔레비전 속에서 나오는 가수들을 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자그마한 감탄과 함께 눈을 쉽사리 떼지 못 했다. 노래에 맞춰 그려지는 춤 선에 맞춰 눈동자는 무지 속에서 곡선의 선율을 자아냈다. 내게 갇혀 자유롭지 못하는 그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민윤기 씨 되십니까?"



   불행은 행복함을 깨닫는 순간 거침없이 빠르게 찾아들어왔다. 지민이와 함께 공연을 끝내고 어김없이 무대 정리를 하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명함을 내밀었다. 반듯한 외모에 어울리는 옷차림새. 비교적 자유로운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내민 종이 쪼가리에는 유명한 가수들을 배출하기로 소문난 누구나 들어볼 법한 기획사 이름이 박혀있었다. 며칠 전 새로운 데뷔 프로젝트를 위해 캐스팅을 나서던 중 우연히 지나가다 본 무대에서 음악을 춤으로 보여주는 지민의 표현력과 자신이 찾고 있던 이미지에 걸맞은 소년 음색에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했다. 보고에 따른 위의 지시에 그를 찾아갔지만 돌아오는 건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고 한다. 몇 차례나 그를 찾아갔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고 한다. 손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갖고 싶은 금단의 사과임에 놓치고 싶지 않아 평소에 가장 가까이 지내는 나를 찾아왔다고 말한다. 평소에 비밀이 없는 지민에 대한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내게 말끔한 미소로 나의 노래를 내 이름으로 세상에 내주고 혼자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서포트해주는 대신 지민을 넘겨달라는 조건을 내밀었다. 누구에게나 해가 되지 않는 합리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차마 그의 조건에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지 못 했다.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성공과 사랑 사이에서 이렇게 저울질 당해야만 하는 내 상황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나중에 같이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자마자 헐레벌떡 뛰어온 지민에 의해 그가 돌아갈 때까지 나는 그 몰래 주머니에 넣어둔 명함만 만지작거렸다. 옆에서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아, 그런데 윤기 씨. 죄송하지만 두 분 사이는 정리하셔야 할 겁니다."

세상에서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형, 왜 작업실에서 선글라스 끼고 있어요?"


"거기로 가."



그에게 말을 꺼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남긴 흔적을 너무나 사랑해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그를 불러내 정작 한다는 말이 허무할 정도로 간단명료했다. 선글라스 끼고 있는 내 모습에 의아해하면서 웃었던 지민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네게 무슨 말을 꺼낼지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어색한 공기의 흐름은 상황을 부각시키기만 해서 껄끄러웠다.



"헤어지자."


"형?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우리들의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일찍 감치 깨닫고 있었다. 생각보다 말을 꺼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우리들의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일찍 감치 알고 있었다. 담담하게 말 꺼내는 만큼 난 이러한 상황을 몇 번이나 대비했었는지 몸소 느끼게 해주었다. 반면에 예상치 못한 헤어지자는 통보에 놀랐는지 고개를 번뜩 올려 나를 쳐다보는 지민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눈에 띄도록 심히 흔들렸다. 혹여나 그의 눈을 마주치면 애써 굳힌 결정이 그대로 무너질까 봐, 같이 흔들릴까 봐 그의 시선을 일부로 피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선글라스를 택했지만 오히려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기만 했다.



"형, 농담이죠? 말 안 해서 삐진 거예요? 에이!"


"박지민 "


"거기 생각보다 별로라서 거절한 거라 말 안 한 거예요."


"박지민 "


"윤기형, 전 싫어요."


"네가 원하던 일이야."


".. 꼭.. 헤어지지 않아도 되잖아요.."


"가수가 되기 위해선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은 없어져야 해. 우린 너무나 위험하잖아."


"그렇다면 난 안 할래. 가수, 포기.. 할 거야. 이제 형이 내 꿈이야."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은 얼마나 책임감이 필요하고 힘들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포기라는 단어에 망설이는 지민의 모습에 마음을 다시 고쳐잡았다. 고작 우리가 알게 된 시간은 3년. 그 3년 동안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았던 나란 녀석은 정녕 불안정한 그의 지지대가 되지는 못하고 오히려 소중히 간직해왔을 꿈을 망가뜨린 이기적인 놈이 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순수한 마음을 내가 짓밟은 격이었다. 애초에 내게 두 개를 갖겠다는 욕심은 불필요했고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다. 내게 주신 잠깐의 달콤함은 쓴맛을 감추기 위한 깨지기 쉬운 도자기 가면일 뿐. 작은 위협에도 금방 망가질 수 있다면 차라리 내가 깨는 것이 서로에게 마음 편할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다시 처음 그 상태로. 원래 없었던 그 때로.


"형, 그냥 저 이대로 쭉 살아도 좋으니깐.."


"불편해."


".. 형.."


"네가 그곳에 가야 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무슨 소리..?"


"아직도 모르겠냐? 너를 보내는 게 아니라 팔아넘긴 거야. 나를, 내 노래를 위해서."




"내가 네 꿈이면 내 꿈을 이루게 도와."



  시발, 미친 새끼.
고운 말만 쓰던 그 예쁜 입술을 떨어지는 눈물방울 수만큼 욕설이 난무하도록 타락시킨 것도 나였다. 잘생기지도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게 맑던 얼굴을 잔뜩 구긴 것도 나였다. 처음 그를 작업실로 데려왔을 때 언제든지 오라고 주었던 스페이스 키를 항상 소중하게 여겼던 그가 잃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줄을 달아 목에 걸었던 열쇠를 이제는 내게 던져버리고 작업실을 떠났다. 복사본 열쇠를 받고 좋아하던 너의 모습은 이제 없던 일로 돼버렸다. 둘이 살기에 좁게 느껴지던 원룸에서 한 사람이 빠지니 집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한동안 상처받은 그의 얼굴이 아른거려 밥도 잘 먹지 못 했다. 그를 그렇게 보낼 생각은 없었는데..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이러한 상황을 직접 겪으니 의미 없는 헛웃음만 나오기 일쑤였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 탄식과 후회일 뿐이었다. 왜 아무것도 안 먹는지 알겠다. 이제는 물마저 눈물이 되어 내장을 휘젓어 마시기 껄끄러워졌다.




   지민의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탄탄한 몸매와는 반대로 그려지는 부드러운 춤선, 어린애라고 대 놓 광고하듯 보여주는 그의 외모와 맞게 어울리는 목소리. 노래를 특별하게 잘 부르지는 않지만 어딘가 묘한 그의 음색이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초록 검색창에 지민의 이름을 치면 아직 그의 프로필이 뜨지는 않았지만 빠른 기일 내에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잘 챙겨보지도 않는 예능 프로그램을 언제 한번 보게 되었다. 지민의 특유의 미소가 아닌 방송용 미소는 자조적이어서 어울리지 않았지만 너는 여전히 예뻤다. 텔레비전 넘어 웃고 있는 그의 모습에 가슴 한 쪽이 아려오고 입가에 맴도는 씁쓸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 지뢰를 밟은 나는 누구를 원망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었다. 데뷔한지 얼마 안 돼서 그들은 첫 1위를 했다. 서로 부둥켜안으며 울고 있는 모습들이 방송에 고스란히 남겨져 보여줬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이미 새빨간 눈을 한 채 환하게 웃는 네 모습에 괜스레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축하해 단 세 글자를 적는다. 하지만 끝내 수신인에 적혀있는 이름만 바라보다 그냥 다시 홈버튼을 누르고 만다.




   시간은 누구에겐 약이 되고 누구에겐 부작용을 일으킨다. 내게 시간은 약이라고 느끼던 찰나에 부작용을 일으켰다. 내 마음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맞는 선택인지 헷갈리기도 시작했으며 진실마저 왜곡시켜 합리화시켰다. 또한 시간은 언젠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핑계로 인해 그를 위한답시고 나를 위한 길을 선택했을 내면의 자아를 차마 원망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정말 너는 내 꿈을 이루어주었다. 공식적으로 공표되는 내 첫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1번 트랙 'Never Mind'를 포함한 총 12곡이 담긴 꿈에 그리던 앨범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어느 순간 내가 만든 노래들이 라디오를 통해 들려지고 음악 차트에 오르락 내리락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그냥 지나쳐가도 이상하지 않을 작은 노래하는 사람이 이제는 많은 래퍼들에게, 많은 음악인들에게 인정받게 되었다. 소속사를 비롯해 많은 작곡가들에게 같이 작업을 하자는 부탁하는 콜도 끊임없이 들어왔다. 길거리 공연에서 이젠 제법 큰 무대에서 공연도 해보고 이름 석자만 쓸 줄 알던 사인도 나름 멋있게 휘갈겨 쓰는 방법을 미리 구상해보기도 했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예전보다 훨씬 바빠졌다. 이렇게 우리 둘은 서로 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하나만 꽂힌 칫솔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외로움은 조금씩 줄어들어갔다. 아니, 거짓말이다. 가진 것이 늘었지만 정작 여전히 마음은 뻥 뚫린 것 마냥 허했다. 그를 생각하며 만든 11곡. 오로지 지민만을 위한 앨범으로도 충분히 그를 잊지 못함을 증명해주었다. 초본이 나왔을 때 그에게 제일 먼저 달려가 이 앨범을 전해주고 싶었다.



   올해 마지막 미니 앨범을 준비하면서 새로 같이 작업할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때 친구로 만나 열심히 꿈을 키워왔고 함께 나아가 마침내 이룬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과 음악을 작업할 때는 나름대로 즐거웠다. 신념도 비슷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 또한 남부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곡 작업을 콜라보 하자고 제안했을 때 흔쾌히 승낙했었다. 그들이 신신당부하며 토요일 8시까지 꼭 나오라는 전화에 느릿하게 나왔다. 모자를 대충 눌러쓰고 이어폰을 귀에 꽂아 플레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재생하니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Never Mind. 난 부딪힐 줄 모르는 겁쟁이었다. 지나쳐 가는 가로등 불빛이 번져 흐트러졌다. 정호석과 김남준이 내게 내민 것은 앨범 한 장과 종이 쪼가리였다.


'BTS 팬사인회 150번'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박지민이 속한 그룹. 호석이 뒤에 멀리서 보이는 지민의 얼굴이 걸려있는 현수막이 눈에 보였다. 그저 사진일 뿐인데 마음이 쓰라렸다. 뭐라고 할 마음도 나지 않아 그냥 돌아가려고 하니 호석이 나를 붙잡으며 애원한다. 누나가 대신 팬사인회 응모를 해달라는 것을 고민 끝에 결국 내 이름을 쓰고 내버렸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넣은 거지만 진짜로 될지는 몰랐단다. 그들에게는 지민과 나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도 하지 않았고, 작업실 내에서도 봉쇄된 비밀이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몰라도 내게는 그를 만날 자격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종이가 미세하게 떨린다



"형, 부딪힐 거 같으면 더 세게 밟으라면서요."



자기 노래에서만큼은 거짓말하지 마세요. 할 말을 잃었다.




   첫 번째 자리에 앉은 네가 환하게 웃으며 사인회장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여전히 앳돼 보였다. 팬 한 명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며 손도 잡아주고 장난치고, 웃어주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에겐 스쳐 지나가는 소나기였을지 몰라도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나둘씩, 내 앞에 있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하니 마침내 내 차례가 돌아왔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여자아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그 앞에 섰다. 모자를 푹 눌러쓴 탓인지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그는 나를 눈치채지 못 했다. 남자 팬이라는 사실에 신기해하며 그저 신나하고 있었다. 펼치지도 않고 내민 앨범을 펼치며 자기 자리를 찾는 예전에 내 손을 잡던 작은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마주 잡은 손이 간지러워 바로 손을 빼내자 남은 빈손이 발가벗은 것 마냥 부끄러웠는지 빠르게 후드 주머니에 찔러 넣은 너였다. 무뚝뚝해. 입이 대발로 나온 지민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담아주니 너무하다며 앞서 달러 나갔던 일이 떠올랐다. 펼치지도 않고 앨범을 내밀자 당황해하더니 금세 펼치며 자기 자리를 찾는 예전에 내 손을 잡던 작은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마주 잡은 손이 간지러워 바로 손을 빼내자 남은 빈손이 발가벗은 것 마냥 부끄러웠는지 빠르게 후드 주머니에 찔러 넣은 너였다. 무뚝뚝해. 입이 대발로 나온 지민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담아주니 너무하다며 앞서 달려나갔던 일이 떠올랐다. 성함이 뭐세요.


"민윤기"


   지민이 내 이름에 화들짝 놀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두 눈을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서로 떨어진 시간만큼 일초라도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 눈을 깜빡하는 것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에게 아까 받은 번호표 종이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번호표를 받은 지민이 의아해하며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종이 뒷면에는 차례를 기다리면서 써내린 몇 글자가 적혀있었다. 'Never Mind'



"팬이에요. 박지민 씨 "



   뒤늦게 종이의 뒷면을 본 지민이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막으려는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내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내민 내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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