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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전력] 마른 꽃

문조 2016. 5. 19. 14:59



[진지]마른 꽃



W. NANO



   자신이 제일 뽐낼 수 있는 각자의 고유의 색으로 물든 꽃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말리는 손가락은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생화의 원색이 영롱한 점이 매력적이라면 마른 꽃들은 비록 자신의 색을 잃었다 할지라도 모순된 빛깔을 뽐내며 묘한 이질감으로 인상을 깊게 새겨놓는다. 석진은 저번에 말린 꽃들을 조심스럽게 이미 옆에 준비되어 있던 유리상자 안에 색깔별로 정리하여 넣는다. 바스러지지 않도록. 투명한 유리상자를 통해 보이는 그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 유리상자를 원래 있던 책꽂이에 다시 올려놓는다. 한 쪽 벽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책꽂이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책은 1권도 꽂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유리상자가 자기들만의 이름표를 붙이며 상자의 표면을 그려내며 차곡차곡 쌓여져있었다.


'화사한 봄날, 홍조, 민트 블루'


그가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드는 건지 유리 상자 속 마른 꽃들은 어느 생화보다 생생해 보였다




   쓸모없어 보이는 마른 꽃과 잎으로 색다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석진은 어린 나이에 독창적인 미술 기법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시회를 열만큼 이미 유명인사였다. 그의 손을 거친 마른 꽃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어느 꽃 보다 활짝 피어있는 것 같았다. 역동적이고 따뜻하면서도 밝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그렇게 마른 꽃들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생화에 비해서 마른 꽃들은 그 말대로 죽음을 상징하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시들어있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생 시절에 우연히 알게 된 공모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상금과 미술 작품을 서울 시립 미술관에 전시해준다는 혜택을 전제로 공모전이 내민 주제는 인공적인 도구 사용 없이 오로지 자연의 소재를 이용하여 작품을 기간 내에 제출하는 것이었다. 생화로 사람의 움직임을 표현하려고 했지만 꽃들은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금세 시들어져버렸다.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작품은 가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적적히 드러났다. 그때 자신의 뒤 쪽에서 꽃이 하나 보였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마냥 또렷한 빛깔을 내고 있었다. 마른 꽃이었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석진을 쳐다보며 조그마한 입술을 오므락 조므락 거렸다. 남들과 다른 왜소한 체격을 가진 지민은 유일하게 하나 있는 제자였다.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조그마하고 수수하지만 굴하지 않게 꿋꿋이 걸려있는 자신의 작품 앞에 지민이 서있었다. 소리 없는 감탄사를 내뱉는지 입을 떡 벌린 채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마른 꽃과 어울려 보였다. 수수함이 수수함과 더해져 순수함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림 너무 예쁘지 않나요?"


"아? 네. 그러네요."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진심이 묻어나는 그의 말에 석진이 지민을 향해 한 쪽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김석진입니다. 낯선 사람이 갑자기 손을 내미는 것에 어리둥절하며 석진과 작품 밑에 박혀있는 화가 이름을 번갈아보더니 놀라움에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손을 두 손으로 마주 잡는 지민에게서 작은 떨림이 석진에게 전해졌다.


   매일같이 똑같은 시간에 석진의 작품 앞에서 만나는 지민은 어제와는 달리 점점 왜소해지기만 했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앙상해진 그의 손목은 금세 부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석진이 지민에게 한 번은 물은 적이 있었다. 왜 내 작품이 좋았냐고. 그의 말에 대답하기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눈치를 슬슬 살피더니 양쪽 뺨에 홍조를 붉게 띄우며 이내 대답한다. 저와 닮아서요. 지민은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근육병'

점점 근력이 감소되면서 걷지 못하게 되고 호흡도 힘들어지고 심장의 기능까지 약해지는 병, 즉 근육이 말라죽어가는 병이었다. 이 병을 알기 전까지는 지민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 지망생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손에는 붓이 들려있지 않던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붓조차 들고 있는 것이 버거워졌다. 근육의 통증은 생각보다 너무나 아픈지 그의 눈에선 눈물이 말라있던 적이 없었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몇 번의 자살을 시도를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는지 항상 도망쳐 다시 돌아왔다. 막상 죽음 앞에 서있는 두려움이 커 주춤할 뿐이었다. 살고 싶다.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신 건물을 창설한지 1년째 되어 학생들의 작품들이 전시된다는 소식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지민이었다. 자신은 더 이상 붓을 들지 못하지만 대리 만족이랄까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아주 천천히 걸어 다니며 그림 한 점 한점을 훑어보던 지민이 마른 꽃 작품 앞에서 뚝 하고 발걸음이 멈추고 만 것이다. '마른 꽃에서도 향기는 난다.' 남들은 죽은 꽃이라며 버리는 마른 꽃이 다시 아름다운 작품으로 태어나는 것을 보며 지민이 눈물을 글썽였다.




   몇 년간 새로운 작품은 출고되지 않았다. 여전히 서울 시립 미술관에는 그의 첫 작품이 걸려있었지만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만 갔다. 지민도 더 이상 그곳에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소식 없는 그의 묘한 행방에 의아해했고, 석진의 이름은 그들의 입술 사이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어디 아픈 거 있는 것 아니냐라는 심신의 걱정부터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드는 근거 없는 구설수까지. 어린 화가로 알려지던 그의 이름과 그의 작품이 원래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처럼 잊혀갈 무렵, 그가 새로운 작품을 내었다. 5년 만이었다. 새하얀 종이에 여러 가지 색깔들이 모여 새겨지는 항상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를 연상케 하던 그의 작품이 이번엔 완전히 달라졌다. 새까만 종이에 오로지 하얀색 꽃잎만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한 잎 두 잎 이어진 하얀 꽃잎들이 곡선을 그리기도 하고 직선을 그리기도 하는 것이 자유로워 보였다. 때로는 뭉치고 때로는 흩어지며 그들은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냈다. 어느 때 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지민의 얼굴이 걸려있었다.



"형, 형은 왜 마른 꽃으로만 그림을 그려내요?"


"말라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서."






---------- 짐른 전력 주제 中 '마른 꽃'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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