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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슙민전력] 혼자 살아요

문조 2016. 5. 19. 14:47

BGM - House Of Cards





[슈짐]혼자 살아요



w. NANO











지난여름, 녹아내릴 듯한 쨍한 무더위 속에서 잠깐 동안 스쳐 지나간 차가움의 짜릿함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



   한적한 동네가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요란스럽다. 경적소리,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 사람들과 묵직한 소리 그리고 시끄러운 기계 소리. 몇 달째 비어있던 윗집에 누군가가 이사를 온다고 들었지만 그게 오늘인지는 전혀 몰랐다. 시끄러운 소음에 잠을 자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기분 나쁜 찝찝함이 훅 치고 들어왔다. 밤새 땀을 흘렸는지 등 뒤를 만져보니 축축했다. 새하얀 침대보 위 누운 흔적이 보이는 곳에는 윤곽으로도 축축하게 젖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난하게 더위가 지나갔던 작년 여름과는 달리 올여름은 작년 몫까지 열심히 일했다. 폭염주의보라는 긴급 문자가 올 정도로 푹푹 쪘다. 옆에 우뚝이 서있는 선풍기는 예약시간에 맞춰 꺼진지 오래인지 차가운 공기조차 주변에서 맴돌지 못 했다. 쓸데없이 시간만 잘 지킨다. 손을 뻗어 0을 향해 있는 타이머를 원상태로 돌려놓으니 시원한 바람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선풍기 앞에 앉아 계속 멍하니 바람을 맞이했다. 바람에 의해 흩날리는 조금 긴 앞머리 갈이 눈을 콕콕 찔러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아, 오늘 뭐 먹지. 뱃속에서 요동치는 배고픔에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평소에는 먹는 것을 즐겨 하지 않지만 삼일 연속 야근으로 인해 집에 오자마자 쓰러지듯이 잠들었으니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탓에 음식이 그리워졌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썰렁한 바람이 피부 결을 간질였다. 텅 비어있는 냉장고 가운데에 떡하니 먹다만 참치 캔 하나가 반쯤 열린 채 나를 반기고 있었다. 며칠 동안이나 집에 들어가지 못해 장을 보지 못 했던 것이 이제야 생각났다.






   고양이보다 못한 세수를 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든 모자를 쓰고는 검은 바탕에 흰색 세 줄이 그어진 국민 슬리퍼를 신고 나섰다. 지금은 너무 더우니깐 장은 이따 보기로 하고 집 앞에 있는 편의점 가서 대충 끼니부터 챙기기로 했다. 손님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리는 편의점의 알림 소리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동선은 항상 같았다. 인스턴트 떡볶이와 바로 옆 칸에 배치되어있는 참치 삼각김밥을 집어 들고는 카운터에 가면 이제는 같은 패턴에 익숙해진 아르바이트생이 담배 한 갑을 내민다. 


디스플러스.


   담뱃갑 한가운데에 고래 그림이 떡하니 박혀있는 모습은 귀여워 보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구들과 편의점에 달려가서 자랑스럽게 민증을 내밀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담배를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어떤 담배를 드릴까요라는 물음에 황당한 나와 친구들은 수십 개의 담배가 걸려있는 벽을 보며 빠르게 눈동자를 돌렸다. 그때 내 눈에 띈 것은 고래. 디스플러스였다. 만화 원피스를 연상케하는 담배에 이끌렸는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것만 피고 있다. 맛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직까지도 그거 피냐는 친구들의 핀잔에 가운뎃손가락을 자랑스럽게 치켜들어주면서 그저 웃어줄 뿐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 집 옥상이다. 물론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거라 우리 집이라 하긴 뭐 하지만. 2층 주택이라 건물 자체가 높지 않았지만 언덕 제일 꼭대기 위에 있어 낮은 옥상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높은 건물이 미니어처처럼 작아 보였다. 뭔지 알 수 없는 우월감이 내 콧대를 한없이 높여주는 느낌이 든다. 전혀 나쁘지 않다.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른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가지런히 놓여있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칙- 소리와 함께 불이 붙은 라이터를 담배 끝자락에 갖다 대니 금세 검게 타올랐다.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니 뿌연 연기가 내 시야를 가렸다. 높은 건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 담배는 안돼요!"



  뒤에서 갑자기 큰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나머지 연기를 잘못들이 마셔 사레가 들린 마냥 기침이 연거푸 반복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머리가 주황빛으로 물들어진 한 남자가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같이 발 행위를 크게 하며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축 처진 눈꼬리가 여간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 손가락 사이에 고스란히 꽂혀있는 담배를 빼앗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가차 없이 짓이겼다. 아. 탄식이 제멋대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황당함에 그를 쳐다보자 그가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 이사온 박지민입니다.


등 진 햇빛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마주 잡은 그의 손만은 차가웠다. 그늘 막이 없는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느낌에 서로 마주 잡은 오른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를 주말을 제외한 매주 빠짐없이 볼 수 있었다. 하루에 한 번씩 꼭 들리는 집 앞의 편의점에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아르바이트생은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그가 앉아있었다. 알림 소리를 들으며 편의점에 발을 들이는 순간 밝은 웃음을 선사해주는 박지민 아르바이트생은 턱없이 불편했다. 고개만 까닥거리며 카운터 앞에 서서 손을 내미니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던 때가 생각난다. 담배를 달라는 내 표현에 그는 살며시 자기의 손을 얹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담배를 달라는 내 말에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허겁지겁 담배를 찾아서 손 위에 얹어주는 모습이 조금 귀여워 보이긴 했지만. 언제 한 번은 그가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왜 이 담배를 피우는지 알려줄 수 있냐는 질문에 굳이 알려줄 이유도 없고 거창한 이유도 없었지만 싫다며 장난스레 거절했다. 예상대로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날 이후부터 오기가 생긴 건지 매일 편의점에서 마주치면 그는 항상 내게 같은 질문을 해왔고 나는 여전히 똑같은 대답만 했다. 첫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와는 달리 항상 한결같이 웃어준다는 것이다. 몇 주 동안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서로 오가게 되었고 그 성과로 얻은 것은 서로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나와는 달리 파릇파릇한 스무 살, 통학하려면 왕복 다섯 시간을 다니는 것이 힘들어서 개강하기 전에 자취방을 찾던 중 이 집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담배를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짤막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나름 즐거워 편의점에 몸이 저절로 가게 되었다. 꼭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고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뭔지 딱 정의 내리기 어려운 그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가슴을 간질였다.









   그가 이사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매번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두 번은 밤마다 위쪽에서 내려오는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잠에서 깬 횟수도 손가락으로 세기 어려워졌다. 늦은 시간에 무엇을 하는 것인지 뛰어다니는 건지 발을 빠르게 굴리는 소리는 몇 분 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멈춘다. 밖으로 나가는지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 그 이후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지곤 만다.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소음은 계속해서 장난치듯이 들려왔다. 잠귀가 밝아 자그마한 소리에도 금방 깨버리는데 그렇게 깨어나면 나는 하루 종일 피곤에서 벗어나질 못 했다. 다음 날 다크가 잔뜩 낀 내 두 눈 아래를 보며 지민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다. 괜스레 말이 헛나와 핀잔주는 것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런 생각하는 내가 조금은 낯설다. 밤에 조금 시끄럽다는 나의 말에 그가 울상을 짓는다.


"너 뭐 키우냐? 개? 고양이?"

"아,아니요!"

"그럼 왜 이렇게 시끄러워."


"사실..제가 조금 몽유병이 있어서요."



   조금이라니. 순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그에게 차마 거짓말 아니냐라면 서 면박을 주지는 못 했다. 그냥 믿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주의를 주고 끝냈었다. 하지만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똑같은 소음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밤늦게 가 아닌 새벽 5시, 해가 뜰 시간이다. 이제는 징글징글한 마음에 따끔하게 혼내고 오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하고는 외투를 걸치지도 않은 채 문을 열고 나왔다. 여름이라 할지라도 새벽이라 그런지 약간의 추위에 몸을 잠시 부르르 떨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막상 굳게 닫혀있는 그의 문 앞에 서니 갑자기 문을 두드려도 되는지 잠깐 고민이 되었다. 다음 날에 얘기해도 되는 것을 굳이 이른 새벽에 찾아오는 게 맞는지 싶었다. 똑똑- 빠르게 치는 내 노크에도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밖에 나간 것인가. 지민의 이름을 연거푸 불러보지만 문 넘어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민망한 정적에 괜히 양 팔을 감싸 안아 뜻이 쓰담으면서 다시 내 집으로 내려왔다.









"형, 오늘 우리 집 올래요?"



   지민의 뜬금없는 발언에 흠칫 놀라 들고 있던 어묵 국물이 담긴 종이컵을 놓칠 뻔했다. 당황해하며 혹여나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되물어오자 또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집에 누구 있으면.."


"저 혼자 살아요."



   어묵 국물의 열기가 손을 통해서 옮겨졌는지 내 양쪽 귀가 타들어갈 것 같음이 느껴지니 안 보아도 엄청나게 빨개졌음을 알 수 있었다. 빠르게 굴러다니는 내 눈동자를 보았는지 지민이 또 웃는다. 한 편으로는 무의식적으로 이상하고 야한 상상을 하고 있던 나를 들킨 것 같아 민망함에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문을 여는 순간 향긋한 냄새가 내 콧속을 넘어나들었다. 지민의 집 안은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특별하게 위로 올라온 자잘 자잘 한 물건들이 없었지만 유독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거실에 딱 섰을 때 보이는 온통 새하얀 것들로 가득한 방. 벽지도 가구도 침대도. 정해진 문이라는 틀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어있었지만 그를 표현하는 것처럼 순백한 하얀색으로 도배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곳이 자신의 방이라고 지민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방 안에 발 하나 내딛기도 미안했다. 괜히 내가 들어가서 이 방을 더럽힐까 봐 조심스러웠다. 책상 위에는 흔한 연필꽂이도 없었다. 딱 하나 있는 것이 있었는데 디자인도 크기도 심지어 색깔도 다른 반지들이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 거의 새 거처럼 생긴 반지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반지 안에는 조그마하게 영어로 이니셜들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다 다른 이니셜. 심지어 지민의 이름으로 된 이니셜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독 신경 쓰이는 건 새 거인 것 마냥 광택을 내는 맨 오른쪽에 있던 얍쌀한 은색 반지에는 내 이름과 같은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MYG. 갑자기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날 감싸돌았다.그 순간 퀴퀴한 냄새, 오랜 시간 동안 썩힌 듯한 냄새가 뒤에서 풍겨왔다. 뒤를 슬며시 돌아봤다. 지민이 어느 때와 같은 미소로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자기 머리만 한 잔뜩 얼룩진 망치를 들고. 그대로 나를 향해 휘둘렀다. 강한 타격감에 뇌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뜨거운 것이 폭포수처럼 쉴 새 없이 흘러내려 내 시야를 가렸다. 흐릿해져가는 시선에서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러게, 문은 왜 두들겨."




---- 주간슈짐 中 '혼자 살아요' 전력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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