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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합작] 새벽라디오

문조 2016. 5. 19. 15:23

 







[국민] 새벽라디오

에뛰드 합작

W. NANO




   차창 너머로 보이는 푸른 빛깔을 띠는 논밭들이 넓게 펼쳐진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안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어딘가가 꽉 막힌 듯한 퀴퀴한 연기로 꽉 찬 냉소한 도시와는 달리 손 때가 묻지 않은 무욕함을 뽐내는 맑은 공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겼다.

 

 




*




    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나때문이었다. 큰 사고를 당한 이후, 심신적으로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다는 판단에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처음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있던 곳은 눈을 가린것 마냥 너무나 컴컴해 밤인지 낮인지 구분할 수 없을정도록 모든 빛이 완벽히 차단된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낯설음에 의도치않은 울음이 섞인 소리가 탁해질 때까지 갈급함에 고래고래 질러댔지만 맞장구쳐주는 것은 오로지 다시 되돌아 울려퍼지는 내 목소리였다.




   외로움에 사무쳐 좌절했던 시간도 얼마나 흘렀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감각이 무뎌짐을 느낄 때 이제는 항상 눈을 뜨면 반복되어 보이는 장면에 익숙해져버렸다. 어떠한 때는 문뜩 정신 차려보면 사납게 휘몰아치는 폭풍 속을 뚫으며 정처 없이 걷고 있는 나를 인지하곤 했다. 


 여긴 어디지.. 나는, 나는 누구지?

그렇게 점점 나를 잃어갔다. 부모님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는 않지만 보고 싶어 우는 것도 수백 번이었다. 버려진 이곳에서 방황하는 내게 손을 내밀어 주는 이는 한 명도 없었으리라.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길을 걷다가 지치면 몸을 둥글게 말아 움츠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곤 했다. 추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른 사람의 따뜻한 그 품이 그리워 나를 스스로 감싸 안을 뿐이었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폭풍 소리를 자장가를 삼아 잠을 청하였다. 칼을 가는 듯한 무서운 기세로 휘몰아치던 폭풍이 점점 잔잔해지고 침묵을 맴돌 때, 어림 푸하게 귓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가까이서 속삭임이 들렸다.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지민아, 어딘가 익숙한 세 글자에 눈물이 저절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축축하고 끈적이다. 속눈썹이 멋대로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또다시 그곳에 홀로 있는 상황이 그대로일까 봐, 그 두려움에 눈을 쉽사리 뜰 수가 없었다.


박지민.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엔 컴컴한 공간이 아닌 대조되는 낯선 새하얀 천장이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내 몸을 관통할 듯한 강한 전등 빛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입에 걸려있는 산소마스크가 무척이나 답답했다.


 "ㅈ,지민아!"


 "..ㄴ,누..구세,요..?"





   밖으로 내민 손끝에 느껴지는 바람의 느낌이 오묘해 차창에  머리를 조금 내밀었다. 바람의 손길이 내 얼굴을 쓰담는 게 기분이 좋았다. 비록 나중에 앞에 앉은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지만 말이다.


 "머리 집어넣어라."


네-장난스레 웃으며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데 백미러에 통해 나와 닮은 어머니의 미소가 보였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누구냐는 엉뚱한 말에 얼마나 울으셨는지.. 눈물로 잔뜩 얼룩진 어머니의 그때의 얼굴과는 사뭇 다른 따뜻한 느낌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그다지 충격적이진 않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여러 군데 찰과상에 이어 두 개의 갈비뼈가 부러져 잘못 움직이면 다른 장기까지 위협하는 위험에 처했고, 어깨의 뼈도 손상이 심할 정도록 바스라져 큰 수술로 위기를 몇 번을 거치고 한 달 동안 식물인간처럼 산소마스크에 의지한 채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전문인들도 땀을 빼는 어려운 수술은 다행하게도 무사히 잘 끝냈지만 매일 눈을 뜨지 않는 나를 보면서 어머니는 피가 바싹 마르는 느낌으로 나를 기다리셨다고.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의 빛을 다시 볼 수 있는 대가로 기억의 대부분을 잃었다.



 

   정형화된 아파트 내부와는 달리 이 주택은 그곳보다는 전체적으로 넓었고 사이사이 비집고 들어간 것처럼 끼어있던 공간에 여유가 생기면서 내게 탁 트인 느낌을 주었다. 수수하게 갖춰진 모습들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높아져버린 천장에 괜스레 더 작게 느껴지는 키 빼고는 말이다.





 "이층에는 방은 하나야. 네 방만 있다고 밤새 야한거 보는건 자중해라."
 

"아, 아니거든!"


 "이따 배고프면 밥 먹으러 내려와."





   이 상자만 가져가면 된다며 주신 몸짓보다 조금 큰 상자를 받아들었다. 일층과 이층은 계단으로 이어져있었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히 올라가는데도 불구하고 연륜이 묻어난 주택이라 그런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밟고 올라설 때마다 조금씩 삐거덕거렸다.
끼익-
낡은 쇳소리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은 내 방은 생각보다 더 아늑했다. 침대도 책상도 모두 내가 사용해왔던 가구들이 이곳에 있으니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낯설긴 해도 나쁘진 않았다. 먼저 내려오신 아버지께서 짐을 대충 정리했는지 책꽂이 칸마다 빼곡히 꽂혀있는 책들의 높이가 울퉁불퉁하다. 들고 올라온 상자를 아무 곳에다 두고 침대에 누워 기지개를 켰다. 천장에 있는 창문을 통해 살짝 들어온 노을 빛이 따스하게 내리쬐었다. 누군가가 평화의 기분을 누리고 있다면 바로 이런 기분이 아닐까. 나른함에 기분 좋은 하품을 하며 몽롱한 느낌에 그만 스르륵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입가에 저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미 창문 밖의 세상은 아까와는 달랐다. 붉게 타오르던 노을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어느새 까만 하늘에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거 같은 수많은 별들이 총총 박혀있었다. 몇 시지. 앞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넘기면서 바지 주머니에 꽂혀있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새벽 1시였다. 다시 한 번 기지개를 크게 키며 아직 풀지 않는 상자 쪽으로 다가갔다. 상자를 열어보니 모형 치곤 제법 큰 자동차 모형들이 차곡차곡 주차해 놓은 듯이 정리되어있었다. 그리고 구석 한 쪽에는 우드 모양의 갈색 스피커 모양의 라디오가 모호하게 어울려져 있었다. 예전 본래의 나는 이런 것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지금 굉장히 낯설고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라디오는 먼지가 자욱하게 가라앉은 모습이 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듯하였다. 후- 뿌옇게 작은 구름을 형성했지만 이내 하늘로 떠오르지 못하고 빠르게 흩어지는 게 눈으로 보였다. 스피커 출력하는 부분과 주파수 확인란, 몇 가지 스위치와 다이얼들 그리고 주파수를 잡아주는 안테나가 전부였다. 아무래도 옛날 디자인인지 코드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건전지로 사용하는 제품인 것 같았다. 에- 작동이 잘 되려나. 스위치를 누르자 노란 불이 들어온 것을 보아하니 아직 건전지가 다 닳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지지직- 거리는 잡음 소리가 거슬려 튜닝 다이얼을 돌리며 주파수를 맞는 곳을 찾아대기 시작했다. 얼마나 돌렸을까, 주파수 확인란 숫자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데도 여전히 지지직 거리는 잡음만 들려주던 스피커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잡혔다.

'91.3FM'

 "오늘의 라이브 노래는 'Justin BieberNothing Like Us'  입니다."




   라디오 DJ가 직접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라디오인가?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펴졌다. 그에 어우러져 탁하지도 그렇다고 맑지도 않는 마치 어른이 돼가는 성장기의 소년의 목소리가 가사 하나하나를 읊었다. 비록 영어가 사여서 무슨 내용인지는 짐작을 하지 못해도 그것이 슬픈 내용인 것만은 짐짓 알 수 있었다. 멜로디 탓인지 호소력 깊은 그의 목소리 탓인지 마음이 미워져가기만 했다.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그저, 그저 슬프기만 했다.



 "별이 가득찬 새벽 잔을 기울여 달을 비추세요. 다음 주 이 시간에 또 만나요."


   결국 라디오 방송이 종료될 때까지 계속 듣고있었지만 그가 어떤 사연을 소개했는지 무슨 코멘트를 했는지 어떠한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지 나는 자그마한 라디오 앞에 엎드려서 눈을 감은 채 그가 불렀던 노래가 귓가에 계속 맴돌는 것을 귀 기울여 들을 뿐이었다.




   아직까지 호전되지 않은 몸에 금세 지치기 일수였기 때문에 항상 9시에 잠이 들곤 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특이하게도 수요일 새벽 1시만 되면 눈이 저절로 띄어졌다. 그 방송을 꼭 들었으면 하는 나의 간절한 마음을 잘 알아주기라도 하는 것 마냥. 그리고 곧바로 라디오를 틀어 주파수를 찾는 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그 라디오 방송 이름은 새벽 라디오. 이름 짓기에 고민하지도 않은 티가 나는 간단한 이름이면서도 이 새벽 시간과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한하게도 이 라디오 방송은 다른 라디오 방송처럼 유명하지도 알려지지도 않을뿐더러 그 흔한 인터넷 사이트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라디오가 시작하는 시간을 알 수가 없어 새벽 1시에 맞춰 틀면 매번 DJ의 이름을 듣지 못하고 라이브 노래를 제일 먼저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거의 자신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으며 라디오 사연 소개를 몇 가지와 라이브 노래, 그리고 마지막 멘트를 하며 짧은 마무리를 지으며 그대로 방송은 끝났다.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에 마음에 안정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천장의 창문이 비쳐주는 별빛들이 아름다워서 감상하다 보니 벌써 12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이상하게도 물리치료까지 받아 힘든 심신을 달래줄 달콤한 잠에 도저히 빠지지 않았다. 외롭게 똑딱거리는 벽시계 바늘들이 정확하게 가리키는 숫자는 12시 28분, 문득 어쩌면 오늘은 새벽 라디오의 첫 시작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근히 설레는 마음으로 전원 버튼을 켜니 익숙한 숫자가 주파수 확인란에 비쳤다. 부드러운 선율이 울려 퍼졌다. '91.3FM'



 "안녕하세요, 오늘도 별이 가득찬 새벽라디오 DJ 전정국입니다."


 "전정,국?"

 

"오늘의 라이브는 'Tori KellyPaper hearts' 입니다."





   갑자기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뇌리에 빠르게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며 순간 눈앞에서 잠시 잊고 있던 옛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뛰다가 넘어져 피를 보며 무섭다고 울던 어렸을 적 기억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 하지만 그 무엇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크고 은은한 검은 빛깔이 도는 짧은 머리카락과 큰 눈, 환하게 웃는 모습이 어느 순간 얼룩지면서 사라지더니 이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웃으며 내게 괜찮다고 말하는, 검붉은 피로 물들인 긴 손이 더러워 만질 수 없다며 결국 손가락 끝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던 사람. 전정국. 갑작스러운 모든 기억들이 눈앞에서 빠르게 지나쳐가 어지럼증이 유발되며 찌릿한 두통에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도 사라지지 않았다. 기억이 모두 다 돌아왔다.





  어지럼증과 자기혐오증에 헛구역질이 반복되어 나왔고, 숨이 목에 턱 막혀 고르게 쉬어지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동성애에 대한 수많은 손가락질을 견뎌내기 힘들었고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가 무서워 혼자 살겠다고 저 밑바닥까지 그를 매몰차게 몰아넣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었다. 그의 형에게 받은 유품은 고작 자동차 모형들과 라디오였다. 레이서가 꿈이었던 그의 자동차 모형들은 매일매일 닦아주면서 얼마나 꿈을 꿈꿔웠는지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했다. 그런 그의 삶과 꿈을 짓밟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음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영장 속에 그를 보며 염치없게 울면서 미안하다고 반복하는 내가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그러면서도 그의 유품을 보면 죄책감에 시달려 악몽을 꾸게 되었고, 결국 상자 안에 넣어 눈에 띄지 않는 깊은 곳에 두었던 기억, 횡단보도 앞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며 무심코 뛰어들어버린 것까지 모조리 다 기억나 버렸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빠르게 뛰는 심장 부근을 붙잡으며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번호 표시제한'


평상시라면 받지 않을 전화였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내 손가락은 이미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혹여나 내가 찾는 그 사람일까 봐,전정국일까 봐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이야."


 "여,여보세요..흐..ㄱ.."


 "울지마시고 진정하세요. 형."


 "정국아...정국아!"


 "바보, 또 운다."





   익숙한 목소리에 눈물이 다시 한번 왈칵 쏟아졌다. 라디오 스피커와 동시에 전화기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똑같이 들려왔다. 어떻게 그가 라디오를 통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는지, 방송을 할 수 있었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다시 만났다는 기쁨에 그저 난 울음으로 답했다.


 "정, 정국아.. 미, 안 해.. 으음,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흐윽.."


 "형 잘못이 아니야.. 내가 미안해. 오히려 형에게 짐을 두고 가버려서.."


 ".. 보고 싶어.. 만나면, 안돼?"


 "나도 보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안돼. 나 기다릴 테니까 아주, 아주 천천히 와."


 "혼자는 외롭잖아.. 응..?"


 "형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흐윽. 윽.. 보고 싶어.. 더욱ㄱ아... 정국아.."


 "형, 나 이제 가봐야 해..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요."


 "...."


 "'Ne-yo So sick' 끝으로 새벽 라디오 마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사랑."




 "..나도 사랑해..정국아."



   수요일 새벽 1시, 새벽 라디오 방송은 종영이 되었고, 내 일상에서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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