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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그 알바생

 

w. 문조

 

 

 

 

굉장히 더운 날이었다. 늦은 밤이라 해가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푹푹 찌는 더위에 꽉 조여주던 넥타이를 풀었지만 하얀 와이셔츠가 내 몸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겨우 손부채질에 의지하며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괜히 눈치 보며 살펴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동네에 흔히 있을 법한 PC방이었다.

 

 나는 인터넷 기사보다는 신문을 좋아했고 컴퓨터 타자기를 두들기는 것보다는 직접 종이에 쓰는 것을 좋아했으며, 게임보다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컴퓨터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문서를 작성할 때 독수리 타법인지라 조금 느린 것일 뿐이지 사용은 하고 있었다. 아무튼 내 인생 그래프에선 신문명과는 약간 뒤떨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예전과 다름없이 잘만 지내왔다. 하지만 창창한 나이 35에서 내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남준 씨. 지금 시대가 무슨 시대인데 아직도 자필이야?"

"저는 직접 글 쓰는.."

"그리고 우리는 게임회사라고. 머리만 좋으면 뭐 해? 컴퓨터를 사용할 줄도 모르는데!"

"부장님.. 애초에 저는 이곳에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28살에 처음으로 취직한 작은 출판사에서 문법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타와 맞춤법을 쏙쏙 골라대던 명성이 높았던 나의 시절은 어디 가고 왜 문명에 뒤떨어진 일명 "문찐따"로 불리게 되었을까. 다니던 회사가 망했고 나중에는 어느 게임회사와 합병될지 누가 상상해보았겠는가. 그 와중에 나는 기껏 해봐야 문의 게시판 관리자 정도 하려고 지원했던 서류가 잘못된 전달로 인해 "기획팀 "에 들어가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해봤자 어렸을 때 문방구 앞에서 자그마한 오락기에서 즐겼던 시절이 전부였다. 요즘 시대에 무슨 게임이 흥행하는지 전혀 모르는 나보고 기획을 하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재빨리 이직하기 원했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나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조용히 해! 안되겠어. 오늘부터 약 3 주 동안 이 게임을 체험하고 보고서 작성해 와!"

 

 "..네?"

 

 "오늘 회의 여기서 마치지."

 

 

그렇게 돼서 내 인생 그래프에서 당연히 없어야 할 PC방에 난생처음 가보게 되었다.

 

 

 

*

 

 

 

 

  문을 열자마자 먼저 훅 들어오는 담배 냄새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고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아무리 흡연실이 있다 해도 문을 열면 냄새는 새어 나오니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게임 소리가 키보드 소리와 함께 요란했다. 수많은 컴퓨터가 놓인 자리에 빈 공간이 없을 만큼 사람들은 많았다. 밤 11시인데 다들 집에 안 가는 건가?

 무리들 사이에 틈틈이 비어있는 자리 중 가장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근데 여기 본체는 어디 있는 거야? 책상 밑에서 아무리 본체를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았다. 책상 밑으로 고개를 집어놓고 두리번 거리는 게 이상했는지 옆에 앉은 남자가 게임하면서 눈으로 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아저씨, 본체는 모니터 뒤에 있어요."

 

 

 괜스레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아, 여기에 떨어져 있었네!라며 떨어진 물건을 찾은 것 마냥 옆 사람이 들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옆에 남자가 풋-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모니터 뒤쪽에 있는 본체에서 전원 버튼을 누르자 컴퓨터가 부팅된 지 얼마 안 있어 화면이 바로 켜졌다. 하지만 그다음 관문에 또다시 막혔다. 비회 원로 그 인과 회원 로그인. 이건 또 뭐지. 회원가입은 하기 싫은데. 땀 삐질삐질 흘리며 비회원 로그인 텍스트 창에 괜스레 마우스를 댔다가 회원가입 버튼에 마우스를 댔다가 이렇게 반복하고 있는 내게 힐끔 힐끔 쳐다보던 옆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피방 처음이에요?!"

 

 "피,방? ㅇ,어!"

 

 "에? 정말이에요? 우와! 신기해!"

 

 "조용히 해- 쉿."

 

 "앗, 쉿-"

 

 

 자신의 볼살만큼 통통한 검지로 자신의 입술에 대면서 쉿-하는 모습이 조금 귀여워 보였긴 했다. 꽤나 어려 보였다.

 

 

"근데 그거 회원가입 안 하실 거면 카운터가 서 카드 거기에 적힌 카드번호 비회원 로그인 창에 적으면 되는데.
진짜 처음인가 봐요.. 풋.."

 

 

 아씨- 민망의 연속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남자가 해맑게 웃었다가 시작된 게임에 곧바로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가득 채운 것은 어두운 숲속에서 이리저리 날뛰는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벌레들의 행진이었다.

 

 

 그 남자 말대로 카운터에서 카드를 가지고 와 번호를 입력하니 드디어 정상적으로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화면에 깔려진 여러 게임들의 상징 마크들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아, 벌써부터 지루하다. 네이버 검색창에 오늘부터 3주간 임해야 할 게임 이름을 검지만을 이용하여 천천히 써 내려갔다. '리그 오브 레전드'

 

 


 "회원가입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문구에 부장님 얼굴이 괜스레 스쳐 지나갔다. 젠장, 축하는 무슨. 한 쪽 손을 턱에 괸 채 게임 다운로드를 누르는데 이상한 문구와 함께 다운이 되지 않았다. 에러가 난 것 같은데. 뭐가 잘못됐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게 함정이었다. 분명 회원가입하고 게임 다운로드만 눌렀을 뿐인데. 밀려오는 짜증 남에 머리를 쥐어뜯으니 아까 또 그 옆자리 남자가 끼어들었다.

 

 

 "아저씨 보- 이거 이미 깔려있다구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클릭이었다. 빠른 속도로 창을 내리고 곧바로 바탕화면에 보이는 L 모양을 클릭하더니 어느 순간에는 게임이 로딩되고 있었다. 하하- 요즘 젊은 애들은 컴퓨터 속도만큼 빠르구나. 또다시 감사 인사를 한 뒤에 게임이 실행되기 기다리는 도중에 그 남자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운 시선에 힐끔 힐끔 쳐다보는데 순간 눈 마주치자 또 헤- 하고 웃는다. 넌 뭐가 좋다고 그리 웃냐. 속 마음과 다르게 나는 그 아이를 쳐다보며 웃어주었다. 그러니 괜히 자신도 민망했는지 시선을 휙- 돌렸다. 어- 게임 시작했어요!

 

 

 

 무슨 게임 한 판하는데 한 시간이 걸리지? 화면에 가득 채운 패배라는 글씨에 나의 체력마저 패배한 기분이었다. 눈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무슨 게임을 못한다고 같은 팀에서 욕설이 그리 심한지. 여태껏 살아오면서 들어본 욕설이란 욕설은 그곳에서 다 먹은 것 같다. 더 이상 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가득한 채로 뻐근한 어깨에 기지개를 잠깐 기자 옆에서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넌 아직도 집에 안 갔니?



"와, 아저씨 진짜 못한다."


"인마, 처음이라 그래."

"제가 하는 거 볼래요? 나 나름 잘하는데."

 

 

 30분이 지나고 '망개떡' 이란 닉네임을 달고 화면에 패배라는 글자가 금세 차올랐다. 그와 동시에 나도 모르게 풉-하고 웃으니 시발.. 축- 처진 그의 입꼬리에서 무심코 욕설이 튀어나왔다. 나라를 잃어버린 것 마냥 풀이 죽은 그의 모습이 안타깝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자신만만해하던 그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해서 웃기더라. 근데 에이- 한 번 진 걸로 그러지마라! 또 해서 이긴 모습 보여주면 되지. 라는 내 한마디에 금세 다시 밝은 미소를 지으며 기운을 차리는 모습이 조금 귀엽긴 하더라고. 

 

 

 "와, 드디어 승리!"

 

 "야, 너도 게임 못하네."

 

 "아니그등여!"

 

 

 어느덧 시간은 새벽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미친. 내일 출근인데. 한 시간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지 했던 아까의 생각은 잠시 잊어버린 채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그 남자와 승리라는 타이틀을 달기 전까지 게임을 할 줄은 몰랐다. 이게 바로 게임의 중독이라는 걸까. 이 경험을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끼워져있던 볼펜으로 보고서에 쓸 내용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AD : 공격력 / AP : 주문력 , CS : 미니언 또는 정글몹을 먹은 횟수 ,와드 : 시야를 밝혀주는 아이템....

 

 

 "아저씨. 뭐해요?"

 

 "아, 현타와서."

 

 "아저씨, 현타라는 단어 배웠네요."

 

 

뭐가 그리 웃긴 건지 배꼽 잡으며 웃는 그를 뒤로 한 채 다이어리를 덮고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담배 냄새에 익숙해져 괜찮았지만 여기에 더 있고 싶지는 않았다. 피곤하기도 하고. 어차피 내일 또 와야겠지만. 옆에 남자가 허겁지겁 나를 따라 일어섰다. 사용료를 지불하기 위해 카운터에 갔지만 아무도 서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 아르바이트생은 땡땡이친 건가? 왜 아까부터 아무도 없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이에 그 남자가 헐레벌떡 카운터에 섰다. 그러더니 3000천 원이요- 하는 게 아닌가.

 


 "아저씨, 되게 마음에 들어서 깍아준거에요. 내일도 오실거에요?"

 

 "어..아마 그래야겠..지?"

 

 "그럼 내일 또 봐요."

 

환하게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주는 그의 모습에 가슴이 약간 철렁했다. 엥? 뭐지?  

 

 

 

 

 

 - 랩민전력 中 pc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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