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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 몽리조인(夢裏遭人)

문조 2017. 3. 17. 10:10

몽리조인 (夢裏遭人) : "꿈속에서 만났던 사람"

 

 

w. 문조

 

 

 

 

 

 

 

 온통 다크 블루색으로 감싸 안은 방 안에는 다른 가구들이 없는 까닭일까 창가 아래 새하얀 침대 하나만이 외설적인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위에 동일한 새하얀 잠옷차림으로 다리를 끌어안으며 멍하니 앉아 있던 지민이 끼익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자신과 마주 보고 있는 양쪽으로 여는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무엇에 이끌리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낡은 침대에서 들리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소름끼친다. 고양이 발걸음처럼 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레 떼며 문 앞에 섰다. 문은 어떤 날카로운 것에 의해 난도질되어 흠집 나있었다.

 

 

 그 흔한 전등 하나도 없어도 창가의 햇살 때문인지 밝았던 방 안과는 달리 문 밖으로 펼쳐진 복도는 작은 등들이 천장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되어 미약하게 불이 켜져 있었지만 어두웠다. 요상한 모양의 패턴으로 된 벽지와 금색 띠를 따라 옮겨지던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 복도 저 멀리에서는 한 남자가 맨 발로 걷고 있었다. 마치 지민을 보고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이 느릿하게 걸음을 뗀다. 그의 등만을 주시하며 문 밖으로 나와 복도에 한 발자국 내딛었을 때, 지민은 갑작스런 심한 허리 통증에 숨이 턱 막혀왔다. 심장이 급속도록 빠르게 뛰기 시작하면서 긴장한 듯 땀 한 줄기가 척추를 타고 흐른다. 눈물이 핑- 하고 돌았지만 한 걸음씩마다 숨을 힘들게 내뱉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끌다시피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유는 몰라도 반드시 그를 따라가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걸음은 복도 끝에서 멈추었다. 벽에 걸려있는 액자 앞에 멈춰서더니 한참이나 아무 말도 없이 그림만을 주시한다. 지민이 뒤에 바짝 다가왔을 때까지 말이다. 하얀 배경에 날아오르듯 역동적인 모습을 한 시커먼 한 독수리를 형상케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저기요."


 그의 고개가 지민의 부름에 느리게 돌아간다. 그는 울고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투둑, 투둑 떨어지는 눈물덩어리들이 자신의 발을 적시도록 그냥 두었다. 한참을 지민을 바라보며 슬프게 울던 그의 큰 손이 지민의 뺨 한 쪽을 어루만지었다. 어는새 지민의 눈가에도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이다. 그가 지민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

 

 

 

 

 

 

 딩동-. 딩동-. 딩동-.

 요란스럽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지민이 눈을 떴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새 하얀 천장에는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야광 별 스티커가 색을 잃은 별똥별처럼 곧 떨어질 것만 같았다. 또 다시 똑같은 꿈을 꾸었다. 근 며칠 간 같은 꿈을 반복하지만 도통 무슨 꿈인지 전혀 몰랐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도, 그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근데 왜 항상 끝에는 울고 있는 걸까? 그리운 느낌은 무엇일까? 방금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인지 눈물자국을 소매로 대충 벅벅 닦으며 아직도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인터폰 화면에는 대학 동기 친구인 태형이 양 손에 부피가 꽤나 큰 흰 봉지를 각각 들어 보이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지민이 문 열기까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원 축하해!"

 
 퇴원? 아 맞다.
 요 며칠 간 병원에 있다가 어젯밤에 퇴원한 사실을 지민은 잠시 잊고 있었다. 양손에 든 비닐봉지들은 뭐냐고 물어보자 태형이 씩 웃으며 얘기한다. 퇴원 축하 파티. 봉지엔 익숙한 편의점 로고가 보인다. 봉지에서 하나씩 꺼내는 음식들의 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편의점 음식을 다 털어온 듯 했다. 뒷머리가 잔뜩 눌린 지민의 모습을 본 태형이 요리는 자신에게 맡기고 방 안에서 조금 더 자라며 지민의 등 뒤를 툭툭 민다. 지민이 느릿하게 방으로 들어갔다. 요리가 아니라 조리겠지.

 

 태형이 햇밥 두개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후, 도마 위에 미리 통과 분리해놓은 스팸을 최대한 얇게 썬다. 미리 달궈놓은 프라이팬 위에 스팸 다섯 조각 올려놓으니 자글자글한 소리와 함께 노릇하게 익기 시작했다.

  

 

 

 

 지민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도통 오지 않았다. 아직도 그 꿈의 생생함이 온 몸에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괜스레 아무렇지 않은 허리를 만지작거리며 기어코 지민은 침대 옆에 있던 이젤 위에 놓여있던 하얀 캔버스 앞에 앉았다. 책상 위 팔레트 옆에 놓여있는 필통 뚜껑을 열어보니 제법 짧아진 몇몇의 몽당연필들 사이에 반듯하게 깎아져 놓여있던 긴 4B연필을 집어 들었다. 캔버스 위에 지그시 누르며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태형이 지민을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자 방 안으로 들어갔다. 태형이 방 안에 들어온 지도 모르고 그림에만 온갖 집중하는 지민의 모습에 태형이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남자 누구야?"

 

 갑자기 귓가 근처에 들리는 소리와 함께 맞닿은 뜨거운 입김에 소스라치게 놀란 지민의 연필심이 뚝- 하고 부러져버렸다. 정말 많이 놀랐는지 한층 커진 두 눈으로 한 쪽 귀를 부여잡으며 태형을 바라본다. 캔버스에는 꽤나 그림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가느다란 얼굴에 큰 눈과 짙은 눈썹 그리고 두툼한 입술, 날렵한 턱 선과 코. 꽤나 단정해 보이는 게 꿈 속에서 지민이 본 그 남자와 겹쳐보인다.

 

"나도 몰라."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지도 모르겠어.

 

 

 

 

 


  

 정말 우연이었다.
 이틀 내내 야작으로 인해 밤을 샜던 지민이 잔뜩 피곤한 얼굴로 터덜터덜 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천천히 걷다가 앞에서 서있는 남자의 등에 부딪히고 말았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던 지민이 괜찮다는 그의 목소리에 빼꼼 올려다보았다. 꿈인지 생시인지 꿈속의 그 남자다. 말끔한 양복 차림에 꽉 조여 맨 넥타이가 여간 불편했는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머리를 쓸어 넘기던 남자가 자신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지민의 모습에 상당히 당황해했다. 그것도 잠시. 울려대는 진동에 바지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플립을 열어 확인하는 그의 인상이 확 구겨진다. 화면에 비친 전화가 그다지 달갑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초록색 전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는다. 그가 받자마자 핸드폰 너머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목소리가 앞에 있는 지민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 그는 당황한 표정을 한 채 급히 자리를 떠났다. 꿈 속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지만 상당히 겹쳐보였다. 무엇보다 얼굴이 똑 닮았다. 급한 그의 발걸음이 걸어 들어간 곳은 지민이 사는 빌라 뒤쪽에 위치한 작은 전원주택이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 좋아진 지민이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을 집에 "다녀왔습니다."라며 신발을 벗던 지민의 행동이 그대로 멈췄다. 심하게 낡은 구두 한 쌍이 무법자인 마냥 흐트러지게 놓여 있었다. 다시는 떠오르기 싫어 묻어두었던 불안한 생각이 스멀스멀 등을 타고 올라왔다. 터벅터벅 걸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차마 들지 못했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매섭게 날아온 손아귀에 뺨을 맞은 지민은 반항도 못하고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시발년이 멋대로 집을 떠나?"

 

 한 편으로는 부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집을 찾아왔는지 몰라도 단정한 슈트 차림과는 달리 잔뜩 화가 난 것인지 울긋불긋한 얼굴을 한 채 지민에게 욕설과 고함지르는 사람은 바로 지민의 형이었다. 맞은 뺨이 곧 빨갛게 부어올라 욱신거린다.

 

"기껏 먹여주고 키워주고 보살펴줬더니 은혜를 이런 식으로 배반해?!"

 

 부모님은 교통사고 인해 고모 댁에서 지내던 어린 지민을 데리고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지민의 형인 지혁이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지민이 떠나려는 지혁을 놓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힘이 없던 지혁은 울며불며 절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던 지민을 차마 데려가지 못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며 억지로 바지춤을 부여잡고 놔주지 않았던 그 당시의 고사리 같은 손을 지혁이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다시 잡을 수 있었다. 겨우 지민보다 열 살 많았던 지혁이는 어떻게든 지민을 데리고 살겠다며 고모에게 빌며 그를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해맑게 웃으며 지혁의 품에 안기던 지민은 겨우 10살이었다.

 

 결코 쉽지만 않은 삶은 지혁에게 타락의 맛을 보여주었다. 타락은 곧 사람을 바꾸었다. 입도 안대던 술을 들기 시작하였고 쌓아두었던 그의 분노는 곧바로 지민에게 향했다. 지민은 그저 비난과 폭언을 퍼붓는 지혁이를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힘든 것을 아니까. 비수를 꽂는 지혁의 말에 수긍할 뿐이었다. 그리고 항상 그 끝에는 어느 정도 분노가 수그러든 지혁이가 정신 차렸는지 울고 있는 지민에게 잘못했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우는 그를 달랬었다. 하지만 일은 점점 커져만 갔다. 처음으로 지민에게 손을 대었던 그 순간부터 작았던 상처들이 점점 커졌고 지민의 얼굴까지 타고 올라왔고 지민이 우는 일이 결코 줄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는 당당히 독립할 수 있었다. 물론 형이 허락해줄리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기숙하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치면서까지 말이다. 대학 합격 발표 전화를 받자마자 지민은 옷장에 있던 옷들을 캐리어에 쓸어 담아 욱여넣기 시작했다. 눈물은 후두둑 떨어졌지만 그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제 나는 자유야.

 

 회사 일로 지혁이는 지민의 졸업식에 당연히 오지 못했다. 그 흔한 꽃 한 송이도 받지 못한 채 고등학교 졸업식은 허무하게 끝났다. 졸업식이 끝나고 강당을 나서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족끼리 행복한 미소로 사진 찍는 것에 눈길이 닿았지만 지민은 애써 무시했다. 양손에 들린 미리 싸놓았던 짐이 오늘따라 더 무겁게 느꼈지만 누가 쫓아올새라 부랴부랴 이 동네에서 떠났다. 올라탄 시외버스 안에서 형에게는 나, 갈게. 라는 문자와 함께 완전히 떠났다. 그 이후로 지혁과는 연락이 뚝 끊겼었다. 그런 줄만 알았다.

 

 

 

 지혁이 학교로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업 도중 누군가가 문을 거세게 열었다. 한 순간에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지만 지혁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보고 경악해하는 지민에게 성큼성큼 향하더니 작게 욕을 내뱉었다. 시발. 차마 형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지민은 머리채가 붙잡힌 채 형에게 끌려 나갔어야만 했다. 그의 거친 손길을 뿌리치려고 노력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숙덕거리던 사람들의 시선에 의식한 지혁이 짧게 욕을 내뱉으며 외진 복도 맨 끝 비상계단을 밟아 무작정 그를 끌고 내려갔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가 이끄는 대로 끌려만 가던 지민이 용기를 내어 한마디를 내뱉었고 그의 무식한 발걸음이 뚝 멈추었다.

 

"ㅅ,신고할 거야. 신고할 거라고!"

 

 그 다음부터는 지민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땐 이미 하얀 병실에 누워 있었으니까.

  

 

 

 

 

**

 

 

 


 지혁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하지 않고 째려만 보는 지민에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오른 지혁이 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지민은 덜덜 떨며 반항도 못한 채 그의 폭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했다. 연신 발로 배를 차다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배를 부여잡고 있는 지민의 얼굴을 지그시 밟아 짓이겼다.

 

"또 신고해봐라. 그 땐 너 죽고 나 사는 거다."

 


 지혁이 침을 탁- 뱉으며 집에 나가고 나서야 끝났다. 온 몸에 멍이 들어 조금만 움직여도 아픈지 지민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비명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는지 씁쓸한 피 맛이 느껴진다. 손등으로 대충 벅벅 닦으며 지민이 배를 부여잡으며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는 부엌을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부엌보다 더 난장판이 되어 있는 자신의 방에 그만 주저 앉아버렸다. 온갖 서랍장을 다 헤집어 놓았는지 물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있었고 바닥은 온통 물감 통들이 뚜껑이 열린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지민의 녹아내리는 심정을 표현하듯이 흘러나오는 물감들이 서로 뒤섞여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젤 위 캔버스의 그림은 난폭하게도 칼로 잔뜩 난도질 해놓았다.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이젤 앞으로 기어간 지민이 캔버스를 끌어안으며 서럽게 목 놓아 울어버렸다.

 

 

 

 옥상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무섭지 않은지 아래를 지긋이 주시하며 입에 물은 담배를 떼 깊게 숨을 내뱉었다. 뿌옇게 작은 구름을 형성하던 연기들이 금세 흩어졌다. 아까 잔뜩 울어댄 탓인지 이제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 곳에서 떨어져도 죽지는 않겠지?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자신이 때로는 안타까웠다. 아쉬운 마음으로 담뱃재를 탁탁 손가락으로 털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시발!! 빌어먹을 세상아!!"

 
 마치 지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짜증나고 좆같은데!!! 억울해서 죽지는 못하겠네!!"
".."
"나는 더 악착같이 살 거니깐 니들은 그러던지 말든지!!"

 
 지민이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난간에서 스르륵 내려왔다. 소리가 나는 뒤 쪽으로 슬그머니 가보니 유독 주황 불빛의 창문이 활짝 열린 곳에 한 남자가 얼굴을 쭉 뺀 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아까 만난 그 남자다. 그 남자는 속이 후련한지 이내 기지개를 켜더니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지민이 그를 따라 씨익 웃었다.

 

"아저씨, 너무 시끄러워서 여기까지 들리거든요?"

 

화들짝 놀란 그가 죄송하다며 창문을 급히 닫아버렸다. 지민은 난간에 한 쪽 팔을 올려 턱을 괴어 그의 창문을 쭉 주시했다. 굳게 닫힌 창문이 스르륵 다시 열렸다.

  

"울지 말고 잘 자요."

 

 

 

 


 다음 날 지민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몸도 성치 않을 뿐더러 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새벽에 옥상에서 내려온 지민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해도 그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자꾸만 귓가에서 앵앵 거린지 도저히 잠을 자지 못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그를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만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게 기분이 괜스레 이상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보니 벌써 아침 9시였다. 그 사람은 출근했을까? 대강 후드 집업을 주워 입고 모자를 쓴 후에 밖을 나온 지민이 자연스레 빌라 뒤편으로 걸어간다. 초록색 철창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문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민이 어디서 나온 용기일까 떨리는 마음을 뒤로한 채 초인종 버튼을 누른다.

 

 딩동-. 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분명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애꿎은 돌멩이만 발로 찼다. 입술이 부루퉁 튀어나온 지민이 아쉬운지 차마 그곳에서 떠나질 못했다. 쭈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고 있을 때 바로 옆에 버려져있는 택배 상자를 발견했다. 주변을 살피며 슬그머니 상자쪽으로 다가간 지민이 설마하며 택배 상자의 뚜껑을 만지작 거리더니 킥하고 웃었다. 처리하기 바빴는지 주소지가 그대로 붙어있었다. 바보.

 

 김석진. 왠지 모르게 그 남자의 이름은 김석진일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밑에 고스란히 적혀 있는 핸드폰 번호를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한 지민이 택배 위 주소지를 뜯더니 후드 집업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새벽 1시. 옥상에 올라온 지민이 뒤 쪽으로 향했다. 어젯밤 그 방 창문의 불이 켜지기만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어김없이 닫혀있던 창문이 열렸고 그의 모습이 보였다. 가벼운 복장을 입은 그의 모습은 편해보였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연락처 검색에 김 씨를 딱 치니 김석진 라는 세 글자가 보였다. 초록색 전화기 모양의 버튼을 누를까말까 한 참을 고민하던 지민이었다. 하지만 이내 어김없이 그의 한 맺힌 목소리가 크게 들려오자 자기도 모르게 누르고 말았다. 앗, 저질렀다! 화들짝 놀란 지민이 끊기도 전에 바로 그가 전화를 받았고 밖에서 카랑카랑 울리던 목소리가 전화기 속에서 퍼졌다.

 
-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전화기 속 그의 목소리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사무적이랄까? 지민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못했다. 이내 급속히 몰려드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 지민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석진은 장난전화인가? 라며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아저씨!"
 - 누구세요?
"동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저랑 통화할래요?"

 

 놀란 석진이 창문 밖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설마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자세히 잘 보이진 않았지만 조금 높은 곳, 똑같은 그 곳에서 지민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반가워요. 전 박지민이라고 해요."

 

 

 

 

 

 

 

 

 

 

<월간진지 : 진지한 달 > 첫 호 - 게스트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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