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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rezero

문조 2017. 1. 29. 03:35

 

 

 

[슈짐] rezero

 

 

 

w. 문조

 

 

 

 

 

 

 

 

 몽롱한 입술사이로 비집고 나온 떨림 속에 나온 이름은 뜻밖이었다.

 

 

 "윤기"

 

 

 꽤나 높은 직급인데도 불구하고 텃새, 권력남용이 없었으며 능력 있고 모두에게 싹싹한 지민과 스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연애 사에 의구심을 품곤 했다. 현재 연애하는지 첫사랑이 누군지, 짝사랑은 해봤는지 혹은 연애해봤는지. 지민의 연애 사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웃으며 없다는 듯이 손사레만 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선이 들어오거나 많은 고백들은 거절해오니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겉 표면상에서 돌고 있었지만 그가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둥, 게이라는 둥, 그 안의 이상한 소문에서는 벗어날 순 없었다. 그저 지민에게는 구겨버린 옛 기억들을 억지로 펼쳐낼 용기가 전혀 없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숨겨왔던 것이었는데 동료들에게 억지로 이끌려온 술자리에서 취기에 아무렇지 않게 그 이름을 쉽게 꺼낼 줄은 전혀 몰랐다. 고작 두 글자만 내뱉었을 뿐인데 북받쳐오는 감정에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뚝뚝 흘린다. 지민은 이름 속에 피어나던 감정들도 자신이 기억을 구겨버림으로써 영원히 삭제되었으리라 생각했었다. 10년 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내왔으니까. 깨끗하게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저 자신의 자만한 생각임을 깨닫지 못한 어림이 있었다.

 

 

 

 

 

 

 

 

***

 

 

 

 

 

 

 쨍그랑-.

 

 비수를 꽂는 날카로운 소리로 인해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떨리는 손끝을 차마 오므리지 못하며 상기된 얼굴로 앞을 쭉 주시했다. 주위에서는 다치지 않았냐며 다급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의식 속에서 멀어진지 오래였고, 그의 새까만 눈동자에는 두 인영이 뚜렷하게 비춰졌다. 수줍은 듯 웃는 여자는 꽤나 지민과 닮아보였다. 눈의 초점이 없이 멍하니 앞만 주시하던 지민의 정신이 돌아온 것은 지민을 나무라는 어머니를 말리려고 했는지 윤기가 입을 처음 열었을 때였다.

 

 

 

"박지민!!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니? 지은이는 지금 놀라면 안 된다니까?"

 

"처남이 우신이 때문에 많이 놀랬나봅니다."

 

 

 

굳이 자신의 아내의 확연히 보이는 부른 배를 조심스럽게 쓰담으면서 말이다. 지민이 지은의 임신사실에 놀라 일을 낸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지민의 친 누나인 지은이 외국 생활한지 어연 8년이 지났을 때였다. 남자친구와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남자친구의 이름이 당시 외국 이름이었기에 누군지 몰랐지만 그 사람이 지민의 첫사랑 윤기일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게다가 임신까지.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혼란스러운 감정에 허우적대는 와중에도 지민은 처남이라는 단어에 자신도 모르게 열불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일단 벌어진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빠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나 속도위반했어? 미쳤어?"

 

 

 

 이상한 어감으로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하지만 생각치도 못한 지민의 과한 반응에 부모님들은 놀랐고 지은이 또한 그저 창피함에 얼굴을 붉히며 죄 지은 것 마냥 고개를 푹 숙였다. 곧바로 옆에 앉아 계신 어머니한테 기어코 등짝을 한 대 맞고 나서야 자신이 말실수 했다는 생각이 든 지민이 지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자리에 얼른 앉았다. 그러나 윤기가 그녀에게 괜찮다며 토닥였던 것은 영 마음에 들진 않았다. 지은의 어깨 위에 토닥이는 그의 손에 시선이 떼어지지 않았다. 서로 어떻게 만났는지 결혼하던지 지민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윤기가 정말 지은이를 사랑하는지가 중요했다. 흉포한 소용돌이가 속을 쑤셔대며 뒤집어 놓고 다니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한 지민이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기어이 돌렸지만 하필 윤기와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단순히 이것은 우연히 일까? 아니면 계속 나를 주시했을까?

 

 그는 지민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렬하게 저돌적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그다지 좋은 시선은 아니었지만 그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고 지민의 심장은 요란스럽게 쿵쾅거렸다. 이게 무슨 의미로 뛰는지는 정확히는 몰라도 결코 반겨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알겠다. 그의 묘하게 흐트러지는 표정에 윤기는 그저 묵묵한 냉담한 표정으로 식탁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더니 액정에 손가락으로 두세 번 톡톡 쳤다.

 

 

동시에 지민의 바지 주머니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마른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꺼낸 핸드폰 화면에는 메시지 내용이 띄워져있었다.

 

 

[ 오랜만이네.]

 

 

위험한 적신호가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앵앵 울렸을지라도 결코 두 귀를 막을 수도 두 눈을 가릴 수도 없었다. 오래전에 끝난 자신의 첫사랑이 은밀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 문자 뒤로는 연락이 전혀 오가지 않았다. 결국 지민이 그 당시 답장을 보내려다가 고심한 끝에 보내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벌어진 내면의 틈사이로 아직도 윤기를 잊지 못하는 마음을 차마 그에게는 들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지민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윤기가 지민에게 연락한 것은 그들의 결혼식이 열리기 하루 전이었다. 그 때, 지은이는 부모님과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다며 본가로 돌아갔었다.

 

 

 

 생각보다 많은 일의 양에 야근까지 한 지민이 녹초가 되어 자신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녹아내리듯 운전석에 몸을 뉘었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자 효과음이 울렸다. 무심하게 핸드폰 집어 들어 화면을 바라보던 지민이 곧바로 자세를 바로 잡았다. 내심 혹여나 그에게 연락이 다시 올까 노심초사하던 지민에게 반가운 이름이었다.

 ‘윤기 형

딱딱하게 매형이라고 저장하던 지민에게 매형과 친하게 지내달라는 지은의 말을 비롯한 또 다른 흑심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서울시 동작구-.'

별 특별한 내용 없이 주소만 띡 하게 보낸 간단하고도 명료한 문자일지라도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 그와는 이미 끝난 사이임을 머릿속으로는 인식하고 있었지만 지민은 네비게이션에 그가 보내준 주소를 그대로 치고 있었다. 윤기의 집을 안내하겠다는 네비게이션의 안내원 여자 목소리마저 질투가 나는 기분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곧바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고 일어난 것인지 헝클어진 머리를 한 윤기는 지민에게 흔한 인사도 건네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현관에 일자로 똑바로 놓여있는 구두들 앞에 실내용 슬리퍼를 한 쌍 내려놓았지만 지민은 우뚝 섰다. 입구에서부터 퍼지는 익숙한 향수 냄새에 지민의 심기를 건드렸다. 지은이의 향수 냄새로 이미 그의 집은 사로잡혀있었다. 새하얀 신발장 위에는 지은과 함께 찍은 사진 액자들이 올려져있었다. 그 중 유독 눈에 튀는 진한 분홍색 액자는 지은의 취향이 틀림없었다. 사진 속에서 자신의 누나와 볼을 맞대며 해맑게 웃는 윤기의 모습을 보니 배알이 잔뜩 꼬인다. 또 다시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끼는 지민이었다.

 

 

"안 들어갈래요."

 

"그럼 다시 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들려오는 대답에 지민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빳빳이 들어 윤기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 기가 차네. 그런 지민을 내려다보는 윤기의 차가운 시선에 부딪히더니 되러 비수가 되어 팍팍 꽂히니 시선을 먼저 피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쩍은 그의 말에도 한 편으로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역겨웠다. 자기만 옛 감정에 지금까지도 휘둘리기만 하는 것만 같아 억울하기도 하다. 역겨움을 헛구역질로 토해내려고 했는지 갑자기 한쪽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행동을 취하던 지민이 빠르게 뒤돌아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고했다.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살짝 열렸지만 나가려는 지민보다 지민의 팔을 잡아당기는 윤기가 더 빨랐다. 힘이 잔뜩 들어간 손아귀가 잡아당기자 잠시 휘청거리던 지민을 돌아 세웠고 문은 그대로 닫혔다. 다시 맞닿은 서로의 시선들은 이상하게도 차가움은 어디가고 눈물로 가득한 슬픔으로 침식되어있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우리가 이렇게 되어야했는지 아무도 물어보지도 변명하지도 않았다. 대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갈급하듯이 서로의 입술이 진하게 맞닿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미하듯이.

 

 맞닿은 입술을 부비며 서로의 입술을 빨았다. 이내 지민의 아랫입술을 혀로 쓸어 넘기며 입술 열기를 재촉하였고 틈새사이로 혀가 들어가 혀끼리 얽혀 서로를 옭아매었다.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듯이 입천장을 간질였다. 진한 키스에 숨이 차오르는 지민이 윤기의 밀쳐내었고 입술과 입술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 공기가 뜨거워졌다. 지민의 양 볼이 붉게 올라왔다.

 

 

 

"나 왜 불렀어요?"

 

"너랑 섹스하려고."

 

"미친 놈."

 

"그럼 너는 왜 왔는데?"

 

"형이랑 섹스하려고."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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