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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슙민/전력] 거짓중독

문조 2016. 5. 19. 15:12





[슙민] 거짓중독


w. NANO







   진동이 요란스럽게도 울리는 핸드폰 화면에는 '010'으로 시작한 익숙한 번호가 나를 애타게 찾는다. 저장되어 있지 않아도 그 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진절머리나게도 알 수 있어 질린다는 표정이 저절로 지어졌다. 또 시작이야. 침대보에 얼굴을 묻고 베개를 둥글게 말아 양쪽 귀를 막아도 진동과 함께 미미하게 떨리는 느낌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벌써 9통째였다. 번쩍거리는 화면이 거슬려 핸드폰을 뒤집어 버리고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머리를 마구잡이로 흩트리니 한숨이 반사적으로 절로 나왔다. 벽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시계의 바늘 두 개다 6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까 아침에 저녁 6시에 요리를 배웠다며 집으로 초대하니까 꼭 오라는 신신당부하던 지민의 문자를 받은 기억이 얼핏 났다.




  띡,띡,띡,띡-
역시나,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는지 현관에 설치된 도어록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문을 열어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장에 들어서니 지민만의 특유의 냄새가 확 풍겨왔다. 악보도 없이 짧은 손가락 마디로 잘도 건반을 두들기는 모습과 어우러진 그만의 향기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와 나는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지만 신입생 환영회나 개강파티, MT에는 내가 전혀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존재 자체는 전혀 알지 못 했다. 그가 나보다 한 학번 아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입학한지 일 년이 지난 이후 유일하게 자주 들리는 동아리방에서 처음 만나게 됐을 때였다.

 

'히사이시조의 summer'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곡이었다. 부드럽게 건반을 쓸어넘기는 손가락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딱 끊어줘야 할 부분은 절도 있게. 부드럽게 쳐야 할 부분은 매끄럽게. 그것에 매혹되어 나도 모르게 숨죽이고 중간중간마다 호선을 그리는 그의 미소를 절로 따라 하며 멍하니 피아노 치는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어,안녕하세요! 이번에 동아리 새로 들어오게 된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지민과 연애한지는 벌써 3년째였다. 누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지민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 사이는 애틋했다. 예전까지는. 만약 아직도 우리가 말할 수 없는 특별한 사이로 보인다면 그것은 고작 겉으로 보이는 허물이었을 뿐, 현실적으로 나는 이미 그에게 마음이 떠난 지는 오래전이었다. 그와 서로 맞지 않는 것도, 그렇다고 싸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가 잘못해서 싸운 적은 수많은 다툼 속에서 고작 한두 번이었다. 단순 질림, 마음이 그냥 떠나버린 것이었다. 사랑을 속삭이던 문자들, 통화 시간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오히려 예전의 기억들을 왜곡시켜버렸다.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눈치를 챈 것인지 지민은 간혹 외간 남자와 바람피우기 일 쑤었고, 항상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나에게 보라는 듯이 행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난 괜찮았다.


   나를 반겨주는 건 구수한 음식 냄새들과 썰렁한 주방이었다. 식탁 위에는 갓 음식을 만들었는지 뜨거운 연기가 뚜껑 사이로 비집고 폴폴 나오는 냄비가 가운데에 올려져 있었고 몇 가지 반찬들이 조그마한 종기에 담겨있었다. 정작 밥 먹으라고 오라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도어록 열리는 소리부터 듣자마자 뛰쳐나와야 할 지민인데 이상하게도 조용한 집안이 어색하기만 했다. 잠시 어디 나갔나.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소파 뒤 쪽에 위치한 화장실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미세한 소리였지만 뭔가 야릇한 신음소리. 설마, 하는 마음에 화장실 쪽으로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가 문에 귀를 대었다.



"읏-"


   짤막한 신음소리였지만 누구 목소린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살짝 돌려 틈으로 보일 정도만 문을 열었다. 좁은 공간에 갇혀있던 뜨거운 열기가 숨어있다가 조금 한 문틈 사이로 빠져나와 훅, 내 뺨을 쓸었다. 그 열기에 나까지 더워지는 기분이었다. 거친 숨소리로 가득한 그곳에서 섹스하는 박지민과 나의 형을 볼 수 있었다. 하,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이젠 하도 하도 안되니 형까지 건드리다니. 물이 채워져있는 욕조 안에서 낯 가지러 운 행위를 하며 헥헥거리는 그 둘의 모습은 마치 짐승 같아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거지 같은 상황은 애초에 내가 보기를 노렸는지 문틈 사이에서 몰래 훔쳐보는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박지민이었다. 젠장. 두 양쪽 볼이 벌 그렇게 된 채로 눈을 게슴츠레 뜨며 신음을 내뱉는 박지민의 모습에 아래가 묵직해졌다는 게 느껴졌다. 뜨거운 열기가 마치 아래로 쏠린 기분이었다. 지민이 내 거기를 보았는지 살짝 미소를 그리며 내 아래쪽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에게 들켰다는 것보다 미소에 왠지 모를 수치감에 당황하여 문을 닫으려고 하니 손을 주먹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한다. 조물닥, 조물닥, 피아노 건반을 쳤던 그의 손가락이 마치 내 거기를 만지는 듯한 느낌이 확 와 닿았다. 이상하게도 야한 느낌에 다리가 풀려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 버렸다. 섹스도 막바지였는지 질퍽거리는 소리가 빨라졌다. 숨을 헐떡거리며 신음소리를 내는 지민의 풀린 눈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읏..하아,흣!"

 


   그와 동시에 사정하고 말았다.






"너,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야. 우리 형이랑."



   부르르 떨며 빠져나가는 형이 갑작스러운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하며 당황한 표정으로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헛웃음을 내뱁더니 지민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담더니 욕조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옆에 걸려 있는 목욕가운을 집어 들어 대충 걸쳐 입고 나서 내게 나지막이 속삭이며 나를 지나쳤다.

속궁합 잘 맞더라. 박지민은 뭐가 좋다고 헤실헤실 처웃고 있었다.



"박지민."


"윤기야, 어때?"





   욕조 위로 일어선 그의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알몸은 솔직히 유혹적이었다. 온몸 구석구석 수놓은 듯이 붉은 꽃들이 피어 하나의 꽃밭을 이루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켰다. 다리 사이에는 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정액이 줄줄 흘렀다. 비릿한 정액 냄새가 코를 찔러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지게 되었다.

 


"하도하도 안되서 이제는 우리 형이냐?"


'다, 너 탓이잖아. 나 너무 외로워."

 


   우리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당시자인 우리들조차도, 그 어떠한 사람도 이유는 알지 못 했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사이에 선을 긋거나 깨트리지 못해 그저 물이 목적 없이 흘러가는 대로 계속 만남을 유지해왔다. 잠시 동안 내가 물인 줄 알고 너를 만나 끌어들었지만 결국 난 물로 착각한 어리석은 기름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너와 나는 결코 섞일 수 없는 아슬아슬한 관계이었지만 한 번 맛본 물 맛은 너무나 중독적이었고, 막상 포기할 수 없어 너를 놓지 못 했다. 이렇게 밑 바닥까지 곤두박질친 상황 속에 이르러서도 너를 계속 붙잡는 나를 원망하고 싶다.

 


"날 아직도 사랑하니?"


"어, 미친년아."



   오늘도 난 너에게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한다. 그것은 중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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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슈짐 中 '거짓말' 주제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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